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현재 안보법제에서는 만일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도 일본의 전면적 참전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일본 헌법에서는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직접 한반도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로 헌법 9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일본이 개입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 헌법 9조때문이며 베트남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 헌법 9조 때문이었습니다. 아베는 이런 점을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일본국 헌법 9조
【일본국 헌법9조】① 항 :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 ② 항 :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 헌법 9조는 흔히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리며 사실상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 부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헌법은 전승국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져 1946년 11월에 공포되었으며 현재까지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실질적 군사 집단인 자위대가 있으나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분쟁 지역에 나가서 전투를 치룰 수 없습니다. 또한 일본이 아무리 뛰어난 첨단 무기를 만들어도 해외에 수출을 할수도 없습니다.

 

 

현재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2003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13개 정보수집위성(Intelligence Gathering Satellite)을 쏘아 올렸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미사일 방어가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북한이 은하 2호 발사를 준비하자 일본 정부는 최초로 탄도미사일 파괴 명령을 내리고 SM-3를 장착한 이지스함을 출동시켰으며 2012년 은하 3호 발사 당시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지대공 유도탄인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부대를 오키나와에 처음으로 대규모 배치했습니다. 당시 그 모습은 마치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군을 떠올리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2016년의 광명성 4호 발사 때도 파괴 명령을 자위대 전체에 하달하기도 했으며 그리고 현재는북한에 대한 공세적 미사일 방어 작전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작년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 실험을 감행하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전쟁의 신호탄'이라 불리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도입하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꺼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현재 운용 중인 최신예 소류급 잠수함의 후속으로 신형 잠수함을 건조해 2021년까지 배치하기로 하였으며 항공 자위대의 주력 전투기인 F15기에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수를 8발에서 16발로 늘리고 호위함 이즈모 등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무장 강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보잉사의 EA-18G 그라울러 등 방공망과 지휘통신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전자전용 공격기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육상 자위대 전력도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육상 자위대가 도입한 4세대 최신형 일본산 전차인 '10식 전차'는 기존 전차들(74식·90식)보다 월등히 뛰어난 첨단 통신전자장비와 경량성을 자랑합니다.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다.

지금의 헌법으로는 일본은 무방비다.

반드시 역사적 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설中-

 

이처럼 일본은 북한 위협론과 한반도 위기설을 이용하여 무장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미사일을 맞기 전에 미리 제거하겠다는 우리나라 킬체인 전략처럼 일본도 공세적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전 자위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을 족쇄처럼 묶었던 평화헌법이 개정되는 것도 사실상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미국 국방부 일본 핵전쟁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일본이 중국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10년 안으로 핵 무장을 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의 진보한 핵 능력 기반과 우주발사대, 크루즈미사일, 잠수함 등에 근거할 때 일본은 충분히 핵 무장이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이 핵 무장을 한다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이용해 한반도 평화를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으며 일본은 그것을 이용해 또다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됩니다.

 

1939년 추축국(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이 세계정복을 꿈꾸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면서 전세계는 끔찍한 전쟁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이 전쟁 기간에는 금찍한 대량 학살과 같은 전쟁 범죄들이 일어났습니다. 전체 사상자 7500만명 중 5000만명 이상이 민간인 사망자였으며 그 절대다수가 추축군의 손에 의해 저질러졌습니다. 유럽-아프리카 전선에서는 주로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에 의해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조직적인 인종 학살이 이루어졌고, 동아시아-동남아시아, 태평양 전선에서는 일본 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집단 강간 등이 벌어졌습니다.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는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연합군에 가담하였고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며 전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식을 고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1969년 서독 총리가 된 빌리 브란트는 이웃 나라인 폴란드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시 주변 나라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전쟁 중에 나치 독일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독일을 미워했습니다. 특히 폴란드는 독일 때문에 인구의 20%가 죽었을 만큼 큰 피해를 당하였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하여 독일 나치 정권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 앞에 섰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빌리 브란트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묵묵히 비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빌리 브란트가 희생자 추모비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서양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완전한 복종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비 내리는 땅에 무릎을 꿇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빌리 브란트의 행동은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에 감동한 폴란드 사람들은 독일에 대한 미움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언론도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라며 빌리 브란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헝가리의 뉴스 캐스터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2004년 슈뢰더 독일 총리는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생각하면 부끄러움 속에서 몸을 수그립니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치군에 항거했던 폴란드 시민군 노병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설립한 '기억.책임.미래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강제로 동원했던 유대인과 일반 노역자 13만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2016년 나치 전범 처벌엔 시효가 없다며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가동한 아우슈비츠 강제 집단수용소의 학살을 방조한 혐의로 지금은 94세의 노인이 된 과거 나치 친위대원(SS)에게 징역 5년이 선고하였으며 지금 현재 히틀러 경례같은 나치 추종 행위와 인종주의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독일은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면 2006년 8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놓여있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상징적인 장소인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강행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면 안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7년이 지나고 아베 일본 총리도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습니다.

 

 

일본은 이렇듯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며 과거 조상들이 저질렀던 잔악한 전쟁 범죄를 미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배우고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에는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으며 위안부 문제는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을 일으킨 자기들의 책임은 뒷전으로 하고 자기들이 받은 전쟁 피해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우익단체 회원은 2차 대전 일본군 군복을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합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도 마음껏 휘두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은 또 다시 스스로 군대를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성도 없고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사죄도 하지 않았던 일본은 엄청난 속도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일본 해상 자위대에 경우 전세계 해군력이 3위입니다. 정말 막강합니다. 하지만 독일은1990년 통일 이후 25년 만인 2016년 러시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처음으로 군 병력을 증강하였습니다. 

 

"독일의 침략 역사를 반성하는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옳았다."

- 메르켈 독일 총리
 
 "침략에는 정의가 없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 아베 일본 총리

독일과 일본은 모두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은 이처럼 너무나 다릅니다.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독일은 잘못을 반성하고 다른 나라와 화해하며 밝은 미래를 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일본도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