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작년 북한 원산에서 펼쳐진 에어쇼에서 미국 헬기가 등장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었습니다. 사실 북한은 과거부터 무기를 밀수해 개조하기로 유명하며 밀수 왕국이라고 불립니다. 중국과 구소련은 물론이고, 미국 무기까지 밀수입하면서 전세계 무기를 수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북한은 로켓 제조에 필수품인 타이타늄을 화물차 밑에 부착해 밀수입하는 등 기가 막힌 방법으로 무기들을 밀수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밀수 왕국이라고 불리는 북한이라도 도입하려다가 실패한 무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원했던 무기들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J-10 전투기

 

북한은 2008년 중국에게 J-10 4세대 전투기를 판매해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J-10은 대당 가격이 4천만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F-16C와 F-16D에 비해 훨씬 저렴해 당시 북한에게는 공군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중국은 난색을 보이며 대신에 수출전용 3세대 전투기 FC-1을 제시하면서 J-10 전투기 판매를 거부하면서 도입에 실패하였습니다.

 

 

JH-7 전폭기

 

JH-7은 1992년부터 실전 배치된 중국의 전천후 전투폭격기입니다. 2011년 김정일은 JH-7 전투폭격기 30대를 요청하였지만 중국 지도부는 북한 영공이 좁아 고성능 JH-7이 굳이 필요하지 않으며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한·미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며 거부하였습니다.

 

 

T-62 전차

 

북한군이 운용하는 T-62는 소련에서 T-62를 개발하던 도중 중-소 국경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이 중국 쪽에 더 기대는 모습을 보여 소련측에서 T-62를 한창 수출하던 때에도 북한에 수출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북한은 끈질기게 소련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밀수왕국답게 중국군이 노획한 T-62의 자료를 전달받고 시리아 등에서 T-62를 입수하여 데드카피하였습니다. 그렇게 데드카피하여 탄생한 전차가 바로 북한의 주력전차인 천마호입니다.

 

 

T-80 전차


소련 최초로 가스터빈엔진을 실용화한 주력전차이자 80년대부터 북한이 소련에게 오랫동안 팔아달라고 부탁했던 3세대 전차입니다. 당시 소련도 자금 상황이 안좋았던 상황이라 북한에 수출하려고 했었지만 우리나라가 소련에 우호적으로 대하고 불곰사업을 진행하면서 북한에는 T-80을 안파는 조건으로 우리나라가 도입하였습니다. 당시 이 사실을 들은 김정일은 밤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T-90 전차

 

2001년에 북한 김정일은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과 함께 전차생산공장을 둘러보면서 레이더 항법시스템, T-90 전차를 대여 또는 판매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불곰사업을 진행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칼에 김정일의 부탁들 거절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김정일은 소련 때처럼 무기를 무상으로 공급해달라는 식이었으며 만약 대여나 판매도 뻔뻔하게 외상으로 해달라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독일은 프랑스가 러시아와 동맹을 체결하자 자연스럽게 양면전쟁에 위험성이 높아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 계획 수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일군 참모총장 슐리펜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슐리펜 계획'을 고안해냅니다. 이 슐리펜 계획은 일단 전선이 프랑스, 러시아 양쪽으로 형성되는 것을 막기위해 우선 프랑스와의 전면전에 집중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프랑스를 점령하고 전력의 10% 가량을 동부로 돌려 최대한 러시아의 공세를 지연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이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한테 밀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슐리펜은 독일군 전력의 10%만으로도 러시아군을 충분히 막아낼 만하다고 착각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까지 끌어들인다면 러시아는 절대 뚫기 힘들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전근대적인 행정체계와 부실한 철도수송망을 고려해 예비군의 동원, 편성, 훈련, 최전선까지의 수송까지 최소 2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아주 만약 러시아의 전력이 예상보다 강력하면 동프로이센과 쾨니히스베르크는 내주고 최대한 시간을 벌고 프랑스를 39일안에 밀어내고 42일까지 완벽하게 프랑스를 점령한 뒤 주력군을 빠르게 동부전선으로 돌려서 러시아를 상대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프랑스를 점령하는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일단 중부전선 지역을 회피하고 우익에 전력을 집중하고 대우회를 통해 파리를 북부에서 포위한다면 프랑스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슐리펜 계획의 핵심은 42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프랑스를 점령하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의 자금지원으로 러시아가 철도망을 확충하면서 실제적인 시간제한은 갈수록 짧아져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가 이전부터 슐리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슐리펜 계획을 본인 멋대로 수정하였고 계획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몰트케는 기존의 슐리펜 계획의 우익과 좌익의 병력 비율은 7:1이었는데 그것을 3:1로 변경하였고 1, 2군을 각각 18개에서 13개 군단으로 축소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총동원이 의외로 빠르자 동부전선에도 우익에서 5개 군단을 빼내 우익을 더 축소시켰으며 후방에 있던 6개의 예비병력을 좌익 지원 위치로 이동시키면서 슐리펜 계획에서 프랑스 포위의 핵심인 우익의 군사력을 심각하게 축소시켰습니다.

 

 

이렇게 슐리펜 계획이 변경되면서 40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강대국 프랑스를 점령하고 바로 동부로 달려가 러시아까지 상대한다는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으로 바뀌었습니다. 

 

*빌헬름 2세(좌측 첫번째)

 

그리고 당시 독일 3대 황제 빌헬름 2세가 참모총장 몰트케에게 계획 변경을 요청했지만 몰트케는 수많은 시간표로 서로 이은 계획을 그렇게 단시간 안에 못 바꾼다고 답변하며 계획을 그대로 밀어부쳤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 그 날 밤 뒤늦게 황제 빌헬름 2세가 '영국과 타협할 수 있다. 군대를 멈춰라!'라고 명령했지만 몰트케는 반쯤 넋이 나가서 '폐하, 이미 시작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네델란드에서 벨기에로 진격 중인 독일군

 

실제로 그 순간 독일군 일부가 룩셈부르크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렇게 독일은 당시 중립을 지키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까지 쳐들어가면서 영국까지 독일에 개전을 선포하면서 상황은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경악한 독일 3대 황제 빌헬름 2세는 뒤늦게 몰트케를 참모총장에서 해임하고 에리히 폰 팔켄하인 원수를 참모총장으로 교체해버렸습니다.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파리 광장에 집결한 택시들

 

결국 벨기에의 저항으로 전선이 벨기에에 묶였고,  1914년 9월 6일~9월 10일 동안 센 강 방어선에서 버티고 있던 프랑스는 파리에서 택시 부대가 끌고 오는 신병까지 받으면서 온 힘을 다해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정말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밀려오던 독일군을 방어하는데 기적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로 단기결전을 노린 슐리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각자 측면을 치기 위해 독일과 연합군은 피로 피를 씻는 4년 간의 참호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참호전 속에서 굴렀던 아돌프 히틀러는 극도로 공산주의를 혐오했지만 1939년 전격적으로 독소 불가침조약을 성사시키면서 전선을 서쪽으로 한정하고 파리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슐리펜 계획은 실패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프랑스 침공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