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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함께 죽겠다. 나를 폭격하라"

이슬람 국가(IS)와 시리아에서 격전을 벌이던 중 러시아의 25세의 젊은 특수부대 장교가 남긴말입니다. 러시아군에 유능한 장교였던 그는 시리아 중부 지역에서 IS 근거지에 대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신이 있는 곳으로 아군의 공습을 유도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자신이 있는 지역이 IS에 의해 포위됐음을 알고 적군과 함께 산화하는것을 선택한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유언을 교신을 통해 남겼습니다.

 

 

 

"이게 끝인가봅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가족과 조국에게 사랑한다고 인사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싸울 수 없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웠다고 전해주십시오. 제 죽음을 복수해주십시오. 제 가족에게 제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십시오. 사령관님 그럼 안녕히!"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면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한 이 장교의 행동이 알려지자 러시아 정부는 성명을 내고 영웅적인 전사였다고 추모하였으며 그의 용감한 행동을 매년 기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결혼한지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새신랑이었으며 출산을 앞둔 그의 아내는 그가 시리아에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사실도 몰랐다고 합니다. 

 

 

한편 이 러시아 장교와 똑같은 선택을 한 전쟁영웅이 있었습니다. 바로 60년전 우리땅에서 목숨을 바친 터키군 소속의 한 영웅입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소속 터키 제1여단(미 25사단 배속)의 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참전한 메흐멧 고넨츠(Mehmet Gonenc)중위는 1951년 4월 22일 중공군 제 60군 예하179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펼쳤습니다.

 

▲당시 중공군과 치열한 포격전이 펼쳐진 터키군 주둔지

 

이 전투는 중공군 최대병력이 동원된 한번도에서의 마지막 공세였고 최대병력이 총동원된만큼 중공군의 공격은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이날 터키군이 배치된 경기도 연천군 대광리 인군 장승천일대에 40여분 간의 사격을 가하였고 터키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격을 끝낸 중공군은 터키군 본부를 향해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터키군 포병진지와 통신시설을 파괴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고넨츠 중위는 본부로 메세지를 보냅니다.

 

"적군은 우리가 주둔하고 있던 언덕을 점령했다. 많은 군인들이 교전중에 사망하였다. 포병부대가 발포해야하는 좌표를 주겠다"

 

그러나 고넨츠 중위가 본부에 넘긴 좌표는 바로 그가 위치한곳의 자표였습니다. 본부측은 "그곳의 좌표는 당신 중대가 있는 곳이다"라며 무전에 답했고 다시 돌아온 메흐멧 고넨츠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적군의 포로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적의 손에 넘어가도록 하지말라! 아군의 총에 죽고싶은것이 우리의 마지막 유언이다. 정확한 좌표를 다시주겠다. 모든 포병부대는 이곳에 발포해야 한다!"

 

본진을 향해 밀려가는 적을 자신의 희생으로 저지하겠다는 단호한 결의였습니다. 이후 고넨츠 중위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본부는 심사숙고 끝에 고넨츠 중위가 알려준 좌표로 발포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포병부대의 군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주어진 좌표에 발포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TOT(time on target)’였습니다. 한 좌표를 향해 동시에 하는 집중 포사격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선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당시 전쟁고아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고넨츠 중위 모습(오른쪽)

 

발포 후 고넨츠 중위를 포함한 터키군은 장렬히 산화했고 중공군과 함께 전장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밀듯이 밀려오던 중공군의 진격도 멈췄습니다. 하지만 그날 울려퍼졌던 화포의 굉음은 유난히 무겁고 슬펐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4년 고넨츠 대위(추서계급)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습니다.

 

 

터키는 6.25전쟁에 1만 4936명을 파병해 수천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이 중 741명은 전사했고 2068명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163명은 실종되고 244명은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참전한 유엔군 소속 16개국 중 사상자 인원 규모로만 네 번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