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1941년 6월 23일 새벽 4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격렬하고 참혹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군은 166개 사단(총 병력 4,306,800명, 야포 42,601문, 전차 4,171대, 전투기 4,389대)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소련을 공격하였습니다. 작전명 바르바로사였습니다. 당시 소련은 전투기, 잠수함, 전차 숫자가 세계 1위였지만 스탈린은 여름에 히틀러의 공격이 없을거라고 예상한 나머지 별다른 경계태세도 취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나는 비록 지금 죽어가지만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흘린 피가 강이 되어 독일군을 쓸어갈테니 잘있거라. 나의 위대한 어머니 조국이여....안녕"

-독일군에게 포위당해 전멸당한 브레스트 요새 지하에서 발견된 소련 병사의 낙서-

 

그렇게 소련의 전투기들은 날아보지도 못하고 지상에서 파괴되었으며, 육군들은 공중 엄호, 무기, 첩보, 통신체계도 없이 단 몇 시간 만에 괴멸되가고 있었습니다.

 

"진격하라! 길이 열렸다. 소련 서부 공업지대가 타격을 입으면 소련은 버틸 수 없다."

독일군은 3개 집단군으로 나뉘어 북부집단군은 레닌그라드,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 남부집단군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습니다. 북부집단군은 시가전을 피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를 포위했고 남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도 계속 진군하였습니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총을 쥘 수 있는 소련 남자는 모두 전선으로!"

-소련 스탈린-

"조국을 구원하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극동 시베리아에서 수십개 정예 사단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라디오-

하지만 소련군이 본격적으로 징집을 시작해 독일군의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수의 병력을 동원하였습니다. 소련 전역에서 수송열차를 타고 신병 수백만 명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소련 전역의 역마다 사람이 꽉 들어차 있었고 소련의 젊은 남자란 남자는 모두 모인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소련은 반격을 시작하였고 이에 독일군의 진격은 더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정보국은 나에게 소련에는 160개 사단과 3000대의 전차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400개 사단과 2만 대의 전차를 파괴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500개의 사단과 3만 대의 전차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은 이에 일본에게 소련을 공격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일본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마지막으로 태풍 작전으로 모스크바 점령을 시도했지만 때마침 소련 측에서 일본이 참전하지 않을 거란 첩보를 받았고 바로 일본쪽 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병력을 모스크바로 재배치, 이후 독일은 소련군의 반격을 받았고 겨울이 되어 러시아의 강추위가 몰아치자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공격을 포기했습니다.

 

 

한편 소련은 독일이 침공하면서 서쪽에 있던 공업 지대를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필요한 무기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필수적이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빠른 속도로 진군해 오고 있음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을 동원한 끝에 공장의 설비들을 동부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공장 지대는 이후 대전 내내 소련군이 싸우는 무기를 공급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기대여법에 따라 미국에서 소련으로 엄청난 양의 지원물자가 속속 도착했습니다.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후퇴하는 병사는 현장에서 즉결 총살하라"

-스탈린 명령 227호-

"스탈린그라드에서는 7초에 한 명씩 독일군이 죽고 있습니다.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 방금 또 한 명이 죽었습니다."

-모스크바 전시 라디오-

"이 세상에 이런 지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어느 소련군 지휘관이 남긴 말-

그리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엄청난 숫자의 소련의 젊은 신병들은 독일군에 맞서 맹렬히 싸웠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원래 목표로 했던 유라시아 지역 점령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소련 영토는 독일의 예상 이상으로 광활했고, 자연 환경도 혹독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벌인 독소전쟁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독일군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총 1,800만명을 동원하였으나 패배하였고 동부전선에서만 총 1,07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독일군 80%를 소련과의 전투에서 잃은 것이었습니다.

 

 

소련군은 3,450만명을 동원하여 3,000만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군인 전사자만 1,100만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민간인까지 합친다면 약 2,900만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는 2차대전 사망자 중 60%를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소련의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남녀 성비율은 43:100이였습니다.

 

미군은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예산, 규모, 화력, 장비의 질, 보급, 물량 등 군대가 필요한 모든 면에서 역사상 최강이며 현재 세계 최강의 군사력, 인류 역사상 최강의 군대입니다. 사용하는 무기 또한 B-2, SR-71, F-22, 니미츠급 항공모함, M1 에이브람스 등을 보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전세계와 비교해도 압도적입니다. 그래서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미군에 대해서는 웬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계 최강 미군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독립된 공군이 없었습니다. 당시 육군과 해군만 있었으며 미 공군은 2차 대전 종전 후 탄생했습니다.

 

 

   미국이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본격적으로 무기를 대량생산하기 전까지 미국 군사력은 세계 1위가 아니었습니다. 겨우 10위권에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당시 나치 독일과 일본은 3위권 안에드는 최강급 군대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작정하고 세계 1위 경제력을 국방력으로 전환한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미군이 탄생했습니다. 1938년 당시 미국 GDP(경제 규모)는 8000억 달러. 나치 독일이 3500억 달러. (영국,소련도 나치독일과 비슷) 일본 제국이 1800억 달러. 이탈리아가 1400억 달러였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전 될 때 까지 총 생산된 군수물자 생산량을 100%로 보고 각국의 군수물자 생산량을 비교하면 미국이 41.7%, 독일 14.4%, 소련 14.0%, 영국 10.2%, 프랑스 4.2%, 일본 3.5%, 이탈리아 2.5%, 기타 10%로 나타납니다. 이는 미국 단독으로 전 세계 군수생산량의 41%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항공모함을 30척 이상 생산했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 항공모함을 13척 이상 잃었습니다.

 

   세계에서 미군이 가장 많이 주둔한 해외기지는 주일미군입니다.(52,060명) 그 뒤로 독일(38,015), 대한민국(24,899), 이탈리아(11,799명), 쿠웨이트(11,313명) 순입니다. 무엇보다 7함대가 주일미군 중 하나이며 중국 해군이랑 북한 해군, 파키스탄 해군이 모두 힘을 합쳐도 미국 7함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주일미군은 미국 전체 군사력 중 15퍼센트 이상이 배치돼 있으며 주한미군보다 적어도 10배 이상 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최초로 만든 무기는 SLBM (잠수함 탄도 미사일 발사), 핵폭탄(원자폭탄), 순항미사일, 스텔스 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원자력 추진 잠수함, 원자력 추진 순양함, NTU 전투함, 이지스 전투함, 사드 미사일, SM-3 미사일 등이 있습니다.

 

 

   미국 국방비는 80년대에 매우 적었습니다. 250조원이었습니다. 참고로 소련이 이때 400조원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국방비가 낮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걸프전쟁에서 미국제 무기의 첨단성과 우수성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전 세계에 전투기가 3만대가 있다면, 미국이 가진게 1만대. 일본,중국,인도,러시아가 합쳐서 1만대. 그리고 나머지 모든 국가들이 1만대라고 보면됩니다.

   스텔스 전투기를 생산하고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지구상에서 미국 뿐입니다. 또한 10만톤급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을 10척 이상 보유한 나라도 미국 뿐입니다. 또한 가장 많은 군사 레이더, 군사용 수송기, 3세대 전차, 항공모함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늘 위의 레이더 사령부인 조기경보기를 100대 이상 보유한 나라도 미국 뿐이며 스텔스 전투기를 300대 이상 보유한 나라도 미국 뿐입니다. 그리고 미국 공군력은 세계 공군력의 50퍼센트 이상이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 육군까지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첨단 무기가 10개 종류씩 발명된다고 해도 그 중 5개 이상은 반드시 미국제입니다.

 

   대한민국 공군 혼자서는 북한 영공으로 들어가기 힘듭니다. 북한 영공에 들어가면 북한의 요격 미사일인 방공망이 미사일을 수없이 발사하기 때문에 격추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걸 다 부수려면 우리나라 혼자서는 최소 40일~60일 정도가 걸립니다. 한달 이상은 싸워야 북한 영공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나서면 단 하루만에 북한 공군과 방공망을 모두 삭제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해외에 배치한 F-22는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기지와 IS 공습을 위한 터키에 있는 기지 정도입니다. ​그리고 최근 고도화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에도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입니다.

 

국방비 지출로 본다면 중국은 분명 세계 2위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 전략 폭격기 전용 엔진을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입니다. 세계 국방비 지출 2위지만 자국산이 아닌 러시아산 엔진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택동의 문화대형명의 여파와 중국 내의 온갖 비리때문에 교차원 연구인 항공기 연구에 전진을 못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항공기 연구는 어느 분야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연구이기에 단순히 중국의 국방비 지출이 막대하고 불법 카피를 잘하는 중국이지만 단기간에 항공기 엔진을 국산화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중국이 군용 항공기 엔진 개발에 대한 투자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선진 기술력을 따라가기는 힘듭니다.

 

 

때문에 1990년대 초 이후 현재까지 중국은 러시아 공중 무기 및 기술, 특히 첨단 전투기의 획득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전에서의 제공권의 중요성이 높지만 중국의 공군기 생산 능력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되어 있고, 현재까지도 첨단 전투기의 자체 생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작년에 스텔스 전투기인 젠(殲)-20과 젠-31 등에 장착할 D-30과 AL-31 엔진 200대를 러시아에서 또 수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AL-31 엔진 가격이 대당 500만 달러가 넘어가며 D-30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D-30 터빈분사 엔진은 중국이 러시아에게 2010년부터 239대를 구입하여 주로 장거리 폭격기 훙(轟)-6K와 최신형 수송기 윈(運)-20에 장착했습니다. 

 

 

AL-31엔진은 1990년대부터 중국이 수입해왔던 엔진이며 수입초기에는 수호이-27과 수호이-30용으로 사용하다가 2000년 이후는 젠-10에 장착했으며 지금은 젠-20과 젠-31 시험기에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수입하는 이 엔진들은 최첨단이 엔진이 아미며 설계가 30년 이상 된 구식 모델로 중국이 지금 시험하고 있는 젠-20과 젠-31 전투기보다 훨씬 가벼운 전투기용으로 설계된 엔진입니다.

 

 

이 때문에 군사전무가들은 중국의 J-20은 미국의 전투기 F-22를 뛰어난 전투기로 만드는 핵심 기능 중의 하나인 슈퍼크루즈를 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슈퍼크루즈는 후방연소기를 점화하지 않아도 마하 1 이상의 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런 첨단 엔진을 조달하기 위한 중국은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러시아에서 사거나 자체 제작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물론 후자를 선호합니다. 문제는 제트 엔진이 말처럼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행중 기체가 견뎌야할 극한의 하중, 제작에 쓰이는 소재와 기술 등은 설계에 난제들입니다. 군사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엔진제조가 중국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중국은 전통적으로 전투기 생산에 있어서 엔진, 설계, 항법 장치(avionics) 등의 3개 분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 설계 및 항법 장치의 기술력은 많이 발전시켰지만 엔진 분야는 아직도 자체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산 개발했다고 우기는 WS-10가 있으나 WS-10는 러시아의 AL-31F 엔진을 복제한 것으로 엔진출력 미달과 함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WS-10 엔진은 J-11과 J-16 다목적 전투기에 탑재돼 있지만 결함이 하도 많아 공장으로 보낸 엔진의 숫자는 새로 생산한 엔진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WS-10 개량이 J-20의 선택안이 될 수 있지만 여전히 크기와 중량에 걸맞은 충분한 힘을 제공하지 못할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이 J-20에 적합한 적절한 터보팬 엔진을 획득하는 가장 빠른 길은 러시아제 AL-117S를 구입하는 것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엔진만 팔려고 하지 않는 만큼 중국은 수호이 35를 통째로 사서 AL-117S를 무기시스템의 일부로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앞서에도 러시아 AL-31F 엔진을 수호이-27SK와 젠-11A 예비엔진 명목으로 수입해 젠-11B 전투기에 장작해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 글로벌 타임스, 신랑 군사채널 등은 최근 인터넷에서 러시아제 AL-37F 엔진이 아닌 ‘타이항(太行) 엔진’으로 불리는 WC-10 개량형이 장착된 사진이 확산되면서 중국의 J-20에 러시아 엔진이 아닌 자국산 엔진을 장착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렀으며 실제로 자국산 엔진 장착을 위해 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군사정보 전문지는 중국의 WC-10 개량형 엔진이 스텔스 성능에 최적화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도 도입하려는 스텔스 전투기 F-35에 장착될 F-135 엔진과도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J-20의 양산형 모델들이 편대 비행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목격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으로 실전 운용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산 엔진은 한계를 곧 드러낼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까지 그랫듯 러시아산 엔진으로 교체될 것이며 앞으로 20년은 더 러시아 엔진을 수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한 중국의 군사력에 미국, 호주, 유럽연합 등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나 중국 주변의 한국, 부탄, 일본, 베트남, 몽골, 대만, 필리핀동남아 국가들 대부분이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으며 이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중국과는 국력 자체가 현격한 격차가 나는지라 중국이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다른 강대국들의 지원없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즉 이 국가들 중에서 그나마 중국에게 독립적으로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나라는 우리 한국과 일본, 인도 정도입니다. 그나마도 한국, 일본은 미국의 지원 하에서 중국과 세력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고, 만약 미국이 물러난다면 한국과 일본이 연합해야 그나마 세력균형이 유지되는 수준입니다.

 

 

아시아에서 중국 지상군을 견제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한 나라는 우리나라 정도고 해군 전력으로 중국과 전면전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인도는 역시 중국처럼 잠재력을 갖추고 있고 핵무기도 가지고 있어 보복이 가능하지만 아직 많은 내부적인 문제가 중국보다 심각하여 발전이 너무 느립니다.

 

 

물론 중국이 인도와 전쟁을 펼치면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겠지만 인도의 피해가 더 심각할 것입니다. 인도는 21세기 초 까지는 중국에게 해군 전력 상 우위를 차지하였으나 중국의 군사력 강화로 인한 각종 장비 도입 때문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이 해양세력에 대한 방어건 공격이건 언젠가는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곳입니다. 2017년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한국은 수천년간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중국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이 몇년전 F-22를 도입하려고 끈질기게 시도했던 것도 동중국해에서의 중국 항모전단을 상대로 해상 제공권 확보를 위한 대중국 견제용이었습니다.

 

북한도 나름 중국에 대한 위협 의식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나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중입니다. 또한 북한의 경우는 그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이 다른 곳은 다 양보해도 북한만은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최종적인 결말은 북중합병 또는 분할통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친중 위성국가 수립 및 김씨왕조 붕괴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죽하면 김정일이 유언으로 미,일이 백년의 적이라면 중국은 수천년의 적이라며 경계를 늦추지말라고 말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은 2014년 들어서 북중국경지대를 전선이라 설정하는등, 중국을 전통적인 동맹으로 여기던 예전에 비하면 중국에 대하여 경계하고 국경지역 군부대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이나 핵전력의 격차는 말할것도 없고 경제적으로까지 중국에 종속되어가고 있는 상황인 데다 국경 대부분이 이미 중국에 사실상 넘어간 상태여서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제압하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제압하는 것보다 더 쉬울 것입니다.

 

브레이크는 자동차의 안전장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만큼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브레이크 성능이 안전과 가장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은 하시지만 브레이크 오일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많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브레이크오일 교체주기는 일반적으로 2년에 한번, 주행거리 4만km마다 교체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교적 다른 소모품에 비해서는 교체주기가 긴편입니다.

 

브레이크 오일은 에틸렌글리콜과 피마자유를 혼합하여 만들어집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브레이크를 작동 시키면 브레이크오일 라인에 압력이 형성되게 되는데 이 유압을 이용하여 브레이크 패드를 디스크와 마찰을 일으켜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게됩니다. 이와같이 브레이크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한 브레이크패드에서 발생하는 마찰열에 의해서 항상 고온에 노출되게됩니다.

 


브레이크 오일의 특성 중 하나는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매우 강한 편이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수분 함유량이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브레이크 오일은 보통 1년에 2% 내외에 수분을 흡수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브레이크 오일 수분함유량이 4%가 되었을때는 교환시기가 되지 않아도 교체하셔야 합니다.

 

 

 

브레이크 오일은 DOT 기준으로 4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보통 DOT 4를 일반승용차에서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브레이크 오일의 특성으로 인해서 분류시켜 놓았는데 건비등점과 습비등점이 모두 다릅니다. 브레이크 오일을 선택하실때에는 고민하실 필요없이 출고당시에 사용한 오일등급을 그대로 사용하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브레이크 오일을 정비/교체작업을 하다보면 잔량오일이 섞이게 되는데 등급이 다른 오일이 섞이게되면 그럴경우 더 안좋을 수 있습니다.

 

 

교환은 정비소에서 브레이크 오일 10,000~15,000원, 공임 25,000~30,000원선에 이루어 집니다. 바퀴를 모두 탈거하고 각 브레이크 유압 라인에서 브레이크액을 빼낸 후 브레이크액 리저버에 채워넣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브레이크 오일은 금속만 안 녹일 뿐인지 인체에 상당히 독한 성분이 많기 때문에 자가정비보다는 전문 정비업체에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브레이크 오일 교체시기를 놓친다면 베이퍼록 현상으로 브레이크 자체가 작동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브레이크 오일은 ABS 시스템과 같은 고가의 내부 부품 및 금속부품, 고무부품 등을 부식시키거나 노화시킬 수 있기때문에 주기적인 점검과 교환이 필요합니다.

 

공수부대는 공중을 이용하여 기동하여 지상에 투입되어 작전을 벌이는 부대를 말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수부대는 고정익 수송기를 통한 낙하산 강하를 주로 이용하여 공수작전을 벌였으나 현재는 헬리콥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해병대가 바다를 통해 육지에서 상륙작전을 벌이듯이, 공수부대는 공중을 통해 전장에 투입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해병대와 공수부대 모두 적 후방의 거점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병력과 화력을 집중 투사하여 새로운 전선을 만든 뒤 정규전을 벌이며 해당 적 지역을 빠르게 점령해가면서 적의 중간 허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하고 단지 그 투사 방식이 바다와 공중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공수부대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위험부담이 다른 부대에 비해 엄청나게 높습니다. 공수부대 주 임무는 적의 중요 거점을 아군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점거해 적의 뒤를 공격하기 때문에 주위가 온통 적지이기 때문에 곧바로 아군이 지원을 달려오지 않으면 자칫 역으로 포위당해 전멸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수부대는 정규전 병력 중 최정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야간작전보다 주간작전이 위험하며 수송기에 타고 있는 동안에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서 만약 적 요격기를 만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야간작전이 안전한건 아닙니다. 어둠 속에서 강하하기 때문에 탐조등이나 조명탄에 비춰지지 않을 경우에는 강하 도중 사격을 받을 확률이 줄어들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서 강하하는 거라 자칫하면 강하도중 나무에 찔리거나 건물 지붕이나 외벽에 부딫혀 추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공수부대의 진입 시도는 들키기가 쉬워 수송기에서 내렸더라도 낙하 도중에 적군의 사격을 받는 경우가 많고 낙하산에 총알 몇발 정도만 맞아도 그대로 추락사하기 때문에 공수부대가 쓰는 낙하산은 안전하게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초속 5m 정도로 빠르게 떨어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수부대원은 떨어지는 순간에 안 다치는 법인 접지법을 배우고, 숙련될 경우 다치지만 않을 정도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부담 때문에 다른 부대보다 훨씬 강한 훈련을 받고 군기도 엄하며, 장비도 좀더 독자적인 것들을 사용합니다.

 

 

 

이런 높은 위험부담을 가진 부대지만 거리가 먼 경우 신속전개로는 공수부대만한 전력이 없기 때문에 미군 등 전 세계를 작전범위로 둔 국가들이 공수부대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미군은 걸프전 당시 해상수송으로는 지구 반대편까지 부대를 투입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덕분에 가까운 공군기지를 확보해서 주변을 장악한 후에 C-5 같은 대형 수송기들로 M1 같은 육군 장비들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나라 군에는 정규전을 수행하는 공수부대가 없다보니, 낙하산을 이용한 공중침투를 주요 침투수단으로 삼는 특수부대인 육군 특전사가 국군 중에서 공수와 연관된 대표부대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흔히 공수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특전사는 공수부대처럼 어느 특정 거점지역에 대규모 병력이 집중 강하하여 정규전을 벌이는게 아니라, 북한 전역에 소규모 단위로 분산 침투하여 각종 비정규전/게릴라전을 벌이는 특수부대로 공수부대와는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항공 및 반항공군 소속의 공군저격여단과 육군 소속의 항공육전대가 공수부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중에서도 정예병력들이긴 한데, 경제난으로 비행기 띄울 기름이 없어 철탑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훈련을 대신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북한 공군으로는 유사시 제공권 장악이 불가능한지라 이들이 제대로 활약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중국에서 공수부대는 공강병이라고 부르며 제15공수군단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모든 공수부대는 제15공수군단 소속입니다. 대만과 대치하고 있는 난징 군관구에 배치되고 있으며 공수용의 경전차와 수송기, 수송 헬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수부대는 이스라엘 육군 제35여단입니다. 이들은 대테러 작전 등의 특수작전부터 동예루살렘 점령 등의 정규전까지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이스라엘 최정예입니다. 유명한 엔테베 작전도 이들이 수행했고, 3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 땅이었던 동예루살렘도 이들이 점령했었습니다. 이처럼 공수부대는 엄청난 위험부담에도 전장을 뒤흔들수 있는 능력을 지닌 최정예 부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공군력의 중요성을 절감한 각국은 앞다퉈 우수한 항공기 개발과 전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현대 전쟁에서 제공권 장악은 전쟁의 판도를 바꿀만큼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전 세계의 공군력을 다 합쳐도 이길 수 없다는 미국과 영원한 미국의 라이벌 러시아의 제공권 능력은 다른 국가들보다 확실하게 강력합니다. 이 두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명품 군용기를 생산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 TOP10에는 모두 미국과 러시아의 전투기이며 이 군용기들은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 중 약 3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군용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0위 수호이 Su-27/30

 

러시아의 Su-27 계열 전투기는 오늘날 15개국에서 874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러시아 공군과 해군이 326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확정 주문잔량이 159대가량으로, 여기에는 개량형인 Su-35가 포함됩니다. 이는 수호이가 5세대 전투기인 T-50/PAK-FA 개발을 마칠 때까지 몇 년 더 생산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9위 보잉 CH-47

 

AH-64 아파치가 공격헬기의 대명사라면, CH-47 치누크는 수송헬기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오늘날 882대가 운용되고 있고, 이 가운데 미군이 534대를 운용하고 있어 최다 운용국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밖에 16개 국가에서 348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최신 모델인 F 모델은 미 육군, 캐나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아랍에미리트 등에 인도되었습니다.


8위 밀 Mi-24/35

 

구소련 시대의 기체인 Mi-24/35 하인드는 현재 54개국에서 897대가 여전히 가공할 성능의 공격헬기로 남아 있습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군이 310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7위 보잉 AH-64

 

현재 최신형인 E형이 생산되고 있으며, 미 육군은 E형에 가디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특히 미 육군은 D형 아파치 롱보를 포함해 AH-64를 756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12개국이 아파치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영국이 65대를 운용하고 있어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아파치를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육군도 정말 오래도록 짝사랑해온 이 아파치를 36대 도입하여 작전배치하고 있습니다.


6위 록히드마틴 C-130/L-100

 

수송기의 전설로 통하는 록히드마틴의 C-130 허큘리스가 6위를 차지했습니다. 60년 전 처음 비행한 C-130은 취역에서 오늘날까지 세계 전술수송기 운용의 기준이 됐습니다. 현재도 C-130J의 수송, 급유, 특수 임무용 모델은 생산라인에서 미군과 해외 운용자들을 위해 계속 출고되고 있고, 민수용인 L-100의 후계 기종인 LM-100J도 개발 중입니다. 현재 64개국에서 1,143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미군이 549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5위 보잉 F/A-18

 

오늘날 세계 최강 전투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F-18 호넷 계열기가 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현재 미 해군을 비롯해 캐나다, 핀란드,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1,575대가 운용 중이며, 이 가운데 미 해군과 해병대가 1,169대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4위 벨 UH-1/212/412

 

국제적으로 ‘휴이(Huey)’라고 알려진 벨 UH-1은 지금도 여전히 폭넓게 쓰이고 있는 헬기입니다. 현재 36개국에서 1,845대가 비행하고 있으며, 주로 H 모델이 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우도 육군과 해군이 도입해 지금까지 기동형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3위 밀 Mi-8/17

 

UH-60 만큼이나 흔히 볼 수 있는 헬기를 꼽으라면 바로 Mi-8/17 계열기입니다. 러시아에서 개발된 기체인 탓에 국내에서는 흔히 볼 수는 없지만, 범위를 세계로 넓히면 그야말로 흔히 볼 수 있는 헬기입니다. 현재 약 2,470여대가 운용 중이며, 160개국 중 78개국이 최소 한 가지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 기종입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군이 518대를 운용하고 있어 전 세계 운용기체 수의 2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위 록히드마틴 F-16

 

지금도 여전히 생산 중인 F-16은 명실 공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기 중 하나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2,700여대가 운용되고 있으며 28번개 국가에서 운용중입니다. 생산라인은 올해 후반까지 계속 가동될 예정이며 현재 운용 중인 2,700여대 가운데 2,242대는 전투기이고, 나머지는 훈련용 기체입니다.


 

1위 시콜스키 S-70/UH-60

 

현재 약 3,600여대가 운용되는 S-70/UH-60 계열 헬기의 대다수는 미군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현재 미 육군이 2,150대 이상, 미 해군이 약 495대를 운용합니다. 총 23개국에서 비행하고 있는 블랙호크와 시호크로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둔 시콜스키는 이 기종에 대해 ‘현대의 전설’이라는 겸손한 별명까지 붙어있습니다.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시쵸프가 후계자가 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흐루시쵸프가 소련의 지도자가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탈린 격하운동이었습니다. 즉, "독소전은 스탈린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있어서 겨우 이겼던 전쟁이다"라고 말하며 흐루시쵸프는 스탈린과의 관계를 청산하려 했습니다.

 

 

이에 중국의 마오쩌둥은 흐루시쵸프에 대해 '수정주의자', '위선자'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흐루시쵸프가 친서방노선을 택하면서 비난의 강도는 더 해졌습니다. 당시 중국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 중국 수뇌부들은 반서방노선을 국가의 기조로 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흐루시쵸프가 예전에 스탈린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지원을 점점 줄여나가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소련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는데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에서 보여준 소련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습니다. 소련은 중국을 지원하는 척 하면서 원조를 해주지 않았고 반대로 인도에게는 전투기와 군사고문을 파견해주면서 지원해주며 중국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여기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의에서 중국대표는 소련에게 '반레닌주의자'라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는데 이는 공산주의의 양강이 적으로 변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던 도중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진원지는 우리나라와 멀지 않은 우수리강의 다민스키섬이었습니다.

 

 

1969년에 우수리강에서 큰 홍수가 났는데 이로 인해 강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중국과 소련의 국경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부터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중국과 소련의 국경수비대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총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자칫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되는 주먹다짐에서 소련 국경수비대에게 밀리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데 하필 이 특수부대가 가져간 무기가 곤봉이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곤봉을 무기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중국 특수부대는 곤봉을 가져다가 소련군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였습니다.

 

 

반대로 소련군의 눈에는 곤봉을 든 중국군이 무기를 든 적군으로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소련군은 다음날부터 권총으로 중국군에 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보다못한 중국은 1969년 3월 12일 3개 소대를 통해 2개 소대가 지키고 있었던 소련 국경수비대에 선제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중국군 30명이 사망하고 중국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의 사망자는 절반수준인 14명이었습니다. 당시 중국군은 보병이었지만 소련은 기계화사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소련은 기다렸다는 듯 T-62전차, BM-21 다연장 로켓등을 통해 중국군에게 폭탄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소련의 압승. 중국군이 1천명 전사, 2천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소련은 240명이 전사하는데 그쳤습니다.

 

 

당시 중국은 보병으로 싸운 반면 소련은 앞선 화력과 기술을 통해 병력이 아닌 우수한 무기로 중국을 압도했습니다. 애초에 중국을 눈앳가시로 봤던 소련은 아예 중국서부인 신장위구르지역까지 군대를 파견해 중국군을 섬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쯤에서 소련에서는 아예 중국을 지도에서 지우자는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의 수도 북경에 핵을 떨어뜨리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를 알아챈 중국 수뇌부들은 수도를 북경에서 충칭으로 옮기려 했고 실제로 충칭에는 당시 소련의 핵공격을 대비한 핵 방공호시설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영토를 더 차지하려다가 멸망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운이 좋았습니다. 그때 체코에서 소련에 대한 대대적인 반소운동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에 소련은 기존 노선을 바꿔 중국이 아닌 체코로 총부리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후 중국과 소련은 외교적 분쟁을 계속 벌이다가 90년대에 국경협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은 한마디로 원자력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의 미 공군도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됩니다. 핵추진 전략 폭격기의 가장 큰 장점은 재급유가 필요없이 거의 무한한 항속거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 이용의 초창기에는 무엇보다도 방사능오염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있지 못했습니다. 즉, 폭격기에 원자로를 탑재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개발 뿐이 아니라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핵추진 전략 폭격기에 큰 장점을 버릴 수 없었던 미 공군은 결국 1946년 5월에 항공기 추진을 위한 핵 에너지사용, NEPA(Nuclear Energy for the Propulsion of Aircraft)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제네럴 일렉트릭, 노스롭 등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기초적인 실험을 실시하였지만 실제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 공군은 이 핵추진 전략 폭격기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만하면 5년 이내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핵 융합로가 어떤 물건인지 이해하고 있던 물리학자 들은 5년 이내에 완성하겠다는 스케쥴 뿐 만 아니라 핵추진 항공기 자체가 공상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NEPA 프로그램 자체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도 내놓지 못했지만 1949년 4월 28일에 열린 회의에서는 그때까지 진행된 개념적 연구와 실험을 바탕으로 미국 전체의 핵 에너지 사용을 총괄하는 핵 원자력 위원회 AEC와 국방성이 협력하여 원자력 추진 폭격기 실기를 만들어 내려는 프로그램 추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ANP(Atomic Nuclear Propulsion) 프로그램 입니다.

 

 

 

(좌측이 직접순환방식, 우측이 간접순환방식)


두개의 다른 추진방식 개념이 ANP 프로그램에서 연구되었는데 직접 순환방식(direct cycle)방식과 간접 순환방식(indirect cycle)방식 입니다. 그리고 ANP 프로그램은 B-36 중폭격기를 기본 베이스로 하는 두 종류의 항공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그 첫번째가 NTA(Nuclear Test Aircraft)였고 다른 하나는 X-6였습니다.

 

 

B-36이 실험기체로 선정된 이유는 다른게 있어서가 아니라 핵반응로와 그에 따르는 방사선 차폐막을 설치하고 비행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형의 기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계획에 따르면 NT 는 1기 그리고 X-6는 2기가 생산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며, 이 두 종류의 기체에는 어떠한 실용적 가치도 의도되지 않았고 단지 일련의 실험을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목적만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탑재되었던 ASTR 핵반응로


NTA 실험을 위하여 맨처음에는 지상실험용 핵반응로, GTR(Ground Test Reactor)가 실험 장비되어 1953년 11월 17일에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1954년 11월 17일에는 본격적인 실험용 핵반응로인 항공기 차폐 실험 반응로, ASTR(Aircraft Shielding Test Reactor)가 작동을 개시하여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NTA 실험은 소형의 가동중인 핵반응로를 탑재한 채로 비행을 실시하여 방사능을 차단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이었습니다. 한마디로 ASTR 핵 반응로는 실험 기체에 어떠한 동력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 핵 반응로를 탑재한 실험용 기체는 1955년 3월 11일 XB-36H로 명명되었다가 6월 6일에 NB-36H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렇게 NB-36H의 첫 비행은 1955년 9월 17일에 이루어 졌고 1957년 3월 까지 총 47회의 실험비행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원자로를 가동한 횟수는 21회였습니다. 당시 실험때마다 C-97수송기에 탑승한 해병대원 1개 소대가 동행하여 추락사고에 대비, 사고 현장 주변을 차단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각종 실험 장비를 장착한 B-50D 기도 동반하여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실험 실시 후 잠정적으로 내려진 결론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저공 비행시에도 방사능에 의한 위협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시 화재가 발생하면 핵분열을 위한 연료봉이 용해되어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도 역시 NB-36H와 비슷한 개념으로 Tu-95 폭격기를 개조하여 소형 핵반응로의 탑재실험을 실시했하였고 이후 핵추진 방식의 쿠즈네초프(Kuznetsov) 터보 프롭엔진을 장착한 시험용 기체를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미국도 실험 결과에 따라 최대 1주일간 지상에 착륙하지 않아도 되는 상용모델을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실험 결과, 수십 톤에 달하는 원자로, 차폐막 무게와 요격, 추락 등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대형참사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10.4억 달러를 투입한 미국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은 실용화 되지 못했고, 아이젠하워의 재임기간에 이루어진 국방 예산의 삭감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3월 28일 ANP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종료시켰습니다. 그렇게 15년간 추진되었던 핵추진 전략 폭격기 개발계획의 흔적은 WS-125A 프로젝트의 개념도 몇장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미국이라면 핵추진 전략 폭격기를 만들 수 있지만 만들지 않을겁니다. (그 정도 크기의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미사일이 너무 많습니다)

 

열병식장에서 북한은 방사능 표식을 한 배낭을 멘 특수부대를 등장시켰었는데 방사능 표식을 한 배낭은 곧바로 핵배낭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얼룩무늬 군복에 방사능표식의 배낭을 맨 이들은 북한의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직속의 특수부대원들입니다. 이 핵배낭은 특수부대 요원들이 약 30-50Kg 가량으로 만들어진 소형 핵탄두를 등에 지고 적지에 침투하여 주요 건축물을 폭파하기 위하여 개발된 핵무기입니다.

 


이러한 핵무기는 수소폭탄처럼 한 지역을 초토화시켜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전략 핵무기와 기능이 다릅니다. 핵배낭은 초소형 핵무기이므로 핵배낭이 폭발했다고 해서 전쟁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들 핵배낭은 특수부대의 위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무기입니다. 

 

▲ 러시아가 90년대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진 핵가방

 

▲ 미국이 초창기에 만들었던 핵배낭

 

사실 이러한 핵배낭은 이미 미국과 소련이 개발해놓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몰랐던 1960대에 개발했었습니다. 핵배낭의 미국식 명칭은 특수원자파괴탄(SADM : Special Atomic Demolition Munitions)입니다. 미 특수부대원들은 휴대용 핵배낭을 매고 주로 낙하산을 이용해 침투하여 적 전략거점에 핵배낭을 설치하고 타이머를 설치한 뒤 신속돌파로 안전지대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후 핵배낭이 폭발하면 전략거점 일대는 완전히 무력화됩니다.

 

 

핵배낭은 그야말로 초소형화 된 핵무기인지라 그 위력도 TNT 10톤에서 1킬로톤(kt) 수준입니다. 즉 고성능 폭약을 가득 적재한 1톤 트럭 10대에서 1000대를 한꺼번에 터뜨릴 때에 걸맞는 폭발력을 보입니다. 물론 고성능 폭약 1000톤이 폭발했다고 해서 전쟁의 향방이 바뀌지는 않지만 군사작전의 향방은 결정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핵무기는 폭발규모가 작아질수록 제어가 더 정밀해져야 하므로 소형핵탄두일수록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핵배낭을 보유했다는 것은 북한이 소형핵무기를 뛰어넘어 초소형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은 이러한 핵배낭 부대를 최고사령관 직속부대로 배치하고 최고사령관의 작전의도에 따라 이들 핵배낭 부대를 침투시켜 한미연합군의 저항거점을 무력화시키고 북한 군부대들의 전반 진격속도를 더욱 높일 목적에서 핵배낭을 개발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은은 2018년까지 남한 본토 전 지역과 여러 시가지를 타격할 준비를 하기 위해선 슈퍼타격력을 가진 크고 작은 핵무기들을 만든다고 밝혔는데, 그 핵무기들의 항목 중에서 이 핵가방 폭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핵무기를 분류할 때 방사능을 최대한 억제시킨 핵무기를 깨끗한 핵무기란 뜻의 ‘클린밤(clean bomb)’이라 하고 방사능이 최대한 많이 뿜어져 나오게 만든 핵무기를 더러운 핵무기란 뜻의 ‘더티밤(dirty bomb)’이라 합니다. 더티밤은 폭발에 의한 무력화가 아니라 방사능 오염이 목적이므로 단순히 재래식 폭탄에 고위험 방사성물질이 섞여있습니다. 이 경우 배낭이 터진 주변 일대는 완전히 무력화되는 상황이 아니라 방사능으로 오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배낭은 더티밤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북한 핵배낭 특수부대의 공격목표가 용산 미군기지, 용산 국방부 청사 등 한미연합군의 도시지역 전략거점에 핵배낭을 사용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북한이 핵배낭으로 타격할 목표로 상정한 대상은 바로 동두천과 의정부의 주한미군 부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듯 북한군 특수부대는 핵배낭을 활용해 미군부대를 단번에 타격소멸시킴으로써 북한 주력전차군단의 신속한 남진을 위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