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안녕하세요


월남전 안케패스 전투는 1972년 4월 11일부터

 

4월 26일까지 맹호부대(수도사단) 기갑연대가

 

 치룬 전투중에 가장 치열한 전투이자

 

 당시 구정공세이후 유일하게 연합군이

 

선전하여 전과를 냈던 전투입니다.

그리고 한국군에겐 몇 안되는 북베트남

 

정규군(NVA)과의 전투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습니다.

 

▲베트남산길을 오르는 국군 육공트럭행렬

 

베트남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1번도로에서 갈라져

 

나와 베트남의 항구도시 퀴논에서 캄보디아

 

국경지대까지 동에서 서로 관통하는 도로가

 

19번 도로입니다.

 

19번 도로는 내륙지방의 플레이쿠에 주둔하고있던

 

월남군 제2군단의 유일한 보급로로써 전력적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월남군 배치도

 

이곳은 원래 미군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1970년

 

미군들이 철수함에 따라 맹호부대 수도사단

 

기갑연대 예하 1중대가 인수받아 수비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였습니다.

 

 

1중대는 638고지 부근의 완반한 구릉에

 

기지를 설치하고 안케패스의 안전통행을 감시하고

 

있었으나 이등른 중대기지보다 높은 638고지에

 

기지를 설치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화근을 불러을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1972년 3월말 월맹군의

 

'춘계 대공세'의  일환으로서 월맹군이 이곳을

 

공격목표로 삼았습니다.

 

 

1972년 4월 11일 새벽 1중대 기지에

 

분대규모의 베트콩들이 출몰하여 습격을

 

가해왔으며 그 날 오전에 플레이쿠로 가던

 

화물트럭 한대가 안케패스 도로상에서 폭파되자

 

1중대가 638고지에 적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그 곳을 수색 매복함으로써 안케패스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전투는 중대규모로 벌어진것이였습니다.

 

매복수색이 의외로 강력한 저항을 받아 중도에서

 

돌아오게 되었고 다음날 19번 도로상의

 

교량 및 도로 몇군데가 추가로 차단되었으며

 

중대기지 역시 82mm 박격포와 B-40 적탄통

 

75mm 무반동기관총 공격을 받자 당시 

 

기갑연대장은 적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수색중대와 1대대3중대를

 

 안케패스에 투입하였습니다.

 

전투로 쑥밭이 된 안케고지의 19번도로

 

그러나 이들 역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제 전투는 중대규모에서

 

대대급의 작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가지만 하더라도 적의 규모를 불과

 

중대급으로 오판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판하에 작전에 투입된 부대들을 교유의

 

건제를 유지하지 않고 혼성편성하여 순차적으로

 

적진에 분산투입됨으로써 아군의 피해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심지어 주월 야전사 부사령관과 사단장이 1중대

 

기지를 순시하는 도중에 82mm박격포 공격을

 

받아 부랴부랴 헬리콥터를 타고 사단사령부로

 

돌아가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시 수도사단 정보처는

 

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있었는데

 

전투개시 5일동안 포로는 물론이고 적의 시체조차

 

습득하지 못했으므로 적의 규모나 상대의

 

부대소속조차 모르고 있엇다고 합니다.

 

다만 월남군 22사단 47연대가 정보를 입수하여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라는 첩보를 제공하였는데

 

사단이나 연대에서는 이 통보를 과장된

 

허위정보로 치부해버립니다.

 

 

거듭된 공격과 공중폭격,포병사격에도 불구하고

 

작전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케패스 차단으로인해 보급이 차단된 월남군

 

제2군단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마침내 작전은

 

연대급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작전은 강력한 화력지원하에 치열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이 전투에서 월맹군의 화력도 만만치

 

않아서 82mm박격포나 75mm무반동총으로 인한

 

아군의 피해도 많았으며 그들의 엄격한

 

사격군기라던지 갈증과 배고픔을 견디며 전투를

 

수행하는 인내심은 주목할만한 것이라고 봅니다.

 

▲월남전당시 씨레이션 전투식량

 

작전기간내내 아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마침내는 사단장이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해당 지휘관을 지휘조치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릴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치열한 격전끝에 마침내 아군은 안케패스

 

주변의 주요 고지와 거점을 점령하였고

 

맹호 기갑연대 제3대대가 잔적 소탕을 실시하는

 

가운데 APC 4대가 안케패스를 지나 적의 저항을

 

받지않으면서 연대 전술지휘소가 있는 '빈케'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19번도로 개통을 확인하고

 

16일간에 걸친 맹호 수도사단 기갑연대와 월맹군

 

3사단 12연대 및 지방 베트콩들간에 벌어진

 

안케패스 전투는 끝나게 됩니다.

 

▲안케패스 전투 승리로 월남

 

19번도로를 달리는 아군 육공트럭

 

안케패스 전투는 주월 한국군이 실시하였던

 

모든 단일 전투 가운데 최대의 인명피해를 기록한

 

전투이자 가장 치열한 격전이었다고 합니다.

 

그 원인으로서는 병력의 혼합편성,단조로운

 

공격패턴,적규모를 오판하고 병력을 집중운용

 

하지 않은점 등이 있습니다.

 

 

전과 : 적사살705명,개인화기70정,공요화기13문

 

손실 : 전사75명 부상109명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임동춘 대위(당시중위)의

 

업적을 기리어 2008년부터 육군에서는

 

모범소대장들을 대상으로 '동춘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고 있습니다.

 

▲안케고개마루에 세워져있던 전승비

 

여기는 자유의 십자군 대한의 건아들이

피흘려 싸워이긴 영원히 기념해야할 성지다.

1972년 4월 월맹군의 대공세에 의하여

월남 전역이 풍전등화의 위험을 고할 때

주월한국군 예하 맹호사단은 이곳 안케패스에

침공해 온 월맹 정규군 3사단 12연대의 주력을

완전 섬멸시킴으로써 월남전사에 길이 빛날

전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적은 중부고원지대를 점거할 목적으로

군사요충인 안케패스 맹호기갑연대 전술기지에

4월11부터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왔다

 

이 전투는 4월26일까지 만15일간 638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피아간 시산혈해의 작전이 수없이

되풀이 되었던 악전고투는 생지옥을

방물케 하였다.

 

그러나 상승 맹호의 대한건아들은 우방월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피 흘려 싸워 이김으로써 편재상 중부월남의

생명선의 19번 공로를 재개통시켰고 불리한

월남 전황가운데 유일의 최초 승리를 거둠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와 같은승리의 이면에는 우리 맹호건아들의

고귀한 젊은피가 이 땅에 수없이 뿌려 졌음을

한-월남 양 국민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먼 이역땅에서

평화의 수호신으로 장렬히 산화해 간 여러 전몰

장병들의 충혼을 길피 추모하고 빛나는 승리를

기념하고자 주월 한국군 맹호사단의 이름으로

이곳에 전승비를 세운다.

 

1972년 10월 1일

 

 -전승비에 새겨진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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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신화 월남전 최강 한국군

 

처참했던 월남전 최악의시가전'후에전투'

 

월남전 파월 한국군은 학살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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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989년 함경남도 함흥의 신포시에

 

박명식이란 남성이 살고있었습니다.

 

그는 수 년 전부터 간경화를 앓았고 치료를

 

위해 큰 병원과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

 

갔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점을 잘 친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병을 치료할 방도가

 

없냐고 물었는데 점쟁이는 아주 끔찍한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젊은 사람의 간을 생으로 먹어야 한다는것

 

그러나 박명식은 점쟁이의 이 말도

 

안되는 처방을 맹신하였고 평소에 소심하고

 

사람들과 다툰적도 없었던 자신이 어떻게

 

간을 구할지 생각하게됩니다.

 

 

그러다 그는 매년 봄과 가을에 학생들이

 

농사일에 대대적으로 동원되는 노동총원이라는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되고

 

그걸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게됩니다.

 

 

평소 당간부와 친분이 있었던 방명식은

 

1990년 봄이 되자 함경북도로 파견된 학생들을

 

일솔하는 일을 하면서 그 근처에 있는

 

숙소의 구조와 학생들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일 뒤 박명식은 힘든

 

농사일때문에 눕자마자 잠이든 학생들의 숙소로

 

침입하였고 15세의 어린 학생의 입을 틀어막고

 

준비한 흉기로 찔러 살해하게됩니다.

 

 

그리고 간을 적출하기 위해 학생을 숙소에서

 

안고 나오다가 동네 개들이 짖는바람에

 

학생의 시신을 그대로 내려놓고 도주합니다.

 

 

첫번째 시도에 실패한 박명식은 점점 분노와

 

독기에 휩싸였고 4일뒤 다른농장에 노동을

 

하던 학생들의 숙소로 침입하였습니다.

 

때마침 볼일을 보기 위해 나온 학생을

 

납치하고 간을 적출해 도망갔습니다.

 

 

다음날 농장원이 발견한 학생의 시신은 너무나

 

끔찍하게 복부가 파여있어서 발견자가

 

기절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박명식은 점점 광기로 사로 잡힌듯

 

사람들을 습격하였는데 1990년 4월부터

 

6개월동안 10명의 청소년들과 20대의 아가씨

 

2명을 추가로 습격해 죽였다고 합니다.

 

 

신포시 보안서 수사팀은 살인범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고 불안에

 

떨던 주민들은 스스로 비공식적인 자경대를

 

만들어서 마을을 매번 순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10월 어느날 박명식은 가을이 되자

 

농장동원을 나온 학생을 상대로 다시 13번째

 

살인을 저지르려던 도중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학생이 발견해 소리를 지르자

 

그대로 도주를 하게 되었는데 살인범을 잡기위해

 

근처를 수색하던 마을 청년들이 학생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와 도망가던 박명식을

 

붙잡게 됩니다.

 

 

체포된 박명식은 12명을 죽이고 간을 섭취한

 

끔찍한 죄를 저질렀기에 북한 형법규정에

 

따라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년 뒤

 

총살형으로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또한 박명식에게 사람의 간을 먹으라고 점괘를

 

내준 점쟁이도 함께 신포시 인민재판소에서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15년동안

 

북한 교화소로 들어가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고

 

현재는 형을 다하고 출소했으나 행방을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잔혹하고 엽기적인 특성때문에 언론이

 

폐쇄된 북한에서도 나름 알려진 사건이었고

 

이후 외신에서도 방송을 할 만큼 크게

 

이슈가 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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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밤거리와 북한의 전력사정

 

없을줄 알았던 북한의 전투식량

 

북한에서 못살겠다 대한민국이놀랐던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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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통기한이란 특정제품이 제조 후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어느정도는 지나도

 

먹어도 되는 음식들이 있는데

 

알아보도록 할게요!

 

 

NO.1 치즈

 

 

부드럽고 고소한 슬라이스 치즈는 일반

 

유제품보다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길어

 

보관이 쉬운 음식입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에서 냉장 보관을

 

할 경우 유통기한이 지난후 70일까지

 

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NO.2 소고기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기력을 보충해주는

 

냉동고기는 유통기한이 5주정도 지나도

 

먹을수 있다고 합니다.

 

썩거나 냄새가 날 경우 먹어서는 안되지만

 

곰파이가 피었을때는 익혀 먹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NO.3 아이스크림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유통기한이

 

긴 제품 중 하나입니다.

 

3개월이 지나면 신선한 맛이 사라지므로

 

그 안에 드시는것이 좋다고 합니다.

 

 

NO.4 계란

 

 

생활 밀착형 식품에 손꼽히는 계란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섭취가능한 음식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후 3주정도까지 가능하며

 

달걀에 물을 넣었을 경우 수면 아래로

 

가라 앉으면 먹어도 괜찮습니다.

 

 

NO.5 우유

 

 

우유는 온도 관리만 제대로 하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충분히 섭취가 가능합니다.

 

최대 50일까지 가능하며 다만 마시기전에

 

시큼한 냄새가 나면 버리는것이 좋습니다

 

 

NO.6 식빵

 

식빵은 냉장고에 얼려서 보관하면 유통기한

 

경과 후 최대 70일까지 섭취가 가능합니다.

 

다만 얼룩곰팡이가 핀 경우에는

 

먹지말고 버려야합니다.

 

 

NO.7 토마토

 

몸에 좋고 맛도 좋은 토마토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도가 올라가 색깔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너무 묽어지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으면 먹어도 건강상에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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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보통 케냐와

 

탄자니아를 많이 가게 됩니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 특히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는 반드시 조심해야할 사항들

 

몇가지 있습니다.

 

 

첫번째 

지갑을 감추세요

 

 

물건을 살 때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땐

 

주의를 살펴야합니다.

 

누군가 쳐다보는것 같으면 절대로 지갑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아프리카는 소매치기가 많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게되면 지갑속은

 

텅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위험하면ATM으로뛰세요

 

 

얼굴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까만 그들이기

 

때문에 처음본 사람은 다들 똑같이

 

생겼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 적응이 될 법하면 복장과

 

외관을 보고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이 될 것입니다.

 

또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 뒤도 돌아보지말고

 

근처 ATM으로 뛰어야 합니다.

 

ATM기기 주변에는 완전무장을 한 경비업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세번째 

강도를 만나면다주세요

 

 

혹시라도 외딴 곳에서 강도를 만나

 

도망칠 방법이 없다면 그들이 원하는데로

 

순수하게 행동하고 돈을 요구할경우

 

다 주는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신분증과 신용카드까지 모두

 

주게되면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설득하여 신분증과 신용카드만은

 

돌려달라고 하는것이 좋습니다.

 

 

네번째 

물건을 맡아달라고하면

거절하세요

 

 

케냐와 탄자니아 사람들이 모우 험악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순박한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돈 많은 외국인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치게 잘

 

대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전달해 달라거나 맡아달라거나

 

등의 부탁을 해 오는경우가 있는데

 

그 물건이 어떤물건인지 모르기떄문에 미래를

 

위해서는 무조건 거절하시는것이 좋습니다.

 

 

 

다섯번째 

자신의 신변을 최대한

감추세요

 

 

터미널이나 숙소가 아닌 길거리에서

 

누군가 다가와 친근감있게 국적이나 숙소

 

그리고 이름등을 물어보고 일행등을 물어보면

 

최대한 말을 아끼셔야합니다.

 

그들은 신변잡기를 위해 나온 삐끼일 가능성이

 

높으며 당신과 친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목표로 잡을 가능성이높습니다.

 

 

 

여섯번째 

터미널에 정차된 택시는

 피하세요

 

 

우리나라 역시 외국인을 상대로 바가지

 

요금을 책정하는 일부 몰지각한

 

 택시기사들이 있습니다.

 

외국이라고 다를게 없습니다.

 

3천원이면 가게되는 장소를 2만원 이상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금 걷더라도 큰 길에 다니는 택시회사의

 

택시를 타는것이 안전하고 가격면에서도

 

저렴할 수 있습니다.

 

 

일곱번째 

우유는 마트에서 사먹어요

 

가끔 농장에서 직접 짠 우유를 건네는

 

현지인이 있는데 가급적이면 마시지마세요

 

짧고 꿁게 살고싶으신분이라면

 

말리지는 않을게요..

 

 

 

여덟번째 

물또한 생수를 사서마시세요

 

 

물 역시 아무곳에서나 목을 축이지

 

말고 생수를 꼭 사먹도록 하세요

 

사먹는 생수 역시 마개가 확실히 밀봉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드셔야 합니다.

 

 

 

아홉번째 

말라리아 모기 조심

 

 

말라리아 모기에 물리게 되면 어지러움과

 

몸살감기가 올 수 있는데 방치했다가는

 

위독해 질 수있으니 모기에 물렸는데

 

컨디션이 나빠진다고 느껴지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세요

 

 

열번째 

식당에서는 그들이 먹는

음식을 고르세요

 

현지인이 먹지않는 음식은 맛이 없거나

 

상할확률이 높은 음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도 사람이기때문에 그들이 먹는

 

음식을 따라서 먹는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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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희귀한 칼라사진으로

 

한국전쟁을 들여다보도록 할게요!

 

 

▲강가에 모여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전쟁중에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엿볼수가 있습니다.

 

 

▲존 리치(John Rich,92)씨가 코다크롬

 

슬라이드필름으로 촬영한 사진

 

 

▲마릴린 몬로 위문공연

 

한국전쟁에 위문공연을 위해 온

 

마릴린 몬로

 

▲미군에게 모여든 아이들

 

미군들은 초콜렛이나 카라멜같은걸

 

자주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명동 입구풍경

 

 

▲한국전쟁 초기에 잠깐 맹위를

 

떨쳤던 소련제 야크기가 추락한 후

 

소년이 해맑게 올라가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을 위해 피를흘리러온 미군

 

고지 참호에서 여유로운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타이거 마우스 M4A3E8 셔먼전차

 

▲식사를 하는 유엔군

 

고마운분들입니다.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걸로 보아 장교인듯 합니다.

 

▲완전히 폭파된 한강다리

 

▲후암동고개

 

 

 

▲한국전쟁 직전 1949년 서울 풍경

 

사진관과 옷가게가 보이네요

 

사진관간판이 영어로 된것이

 

인상깊습니다.

 

▲한국전쟁 직전 1949년 서울 풍경

 

분수대 얼음에서 장난스럽게 노는

 

어린이들이 한국전쟁에 아픔을

 

겪게 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부전선

 

고지전투에 투입된 미군의 M4A3E8셔먼전차

 

▲인천상륙작전을 향해가는중

 

▲한국전쟁 휴전이후에 촬영된 모습..

 

▲전쟁터에 아이들

 

한국전쟁 동안 약 10만여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그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물자나 시설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허허허...

 

할말을 잃게만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듯한 모습입니다.

 

▲다음전투를 위해 행군중인 미군들

 

▲전쟁속에 모녀

 

장작으로 불을 때워서 음식을

 

만드는 듯 하네요..

 

▲한국전쟁에도 버텨낸 서울역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후

 

자신감에 넘치는 맥아더장군

 

▲서울비행장에 모습

 

지금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물자를 옴기는 경춘선 열차

 

청평역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미군 PX

 

서울을 수복한 후 미군 PX로

 

사용했던 신세계 백화점

 

▲1052년 부산 문현동에서 대현동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촬영된 사진.

 

▲휴전을 기다리는 유엔군들

 

▲중공군을 막기위해 만들어진 참호

 

▲미군과 그리스군

 

▲뒷모습을 보면 중공군이나

 

북한군을포로들을 모아놓고 전차로

 

감시하는듯한 모습으로 보일수있으나

 

기갑부대를 창설하며 국방군을

 

모아놓고 교육하는 모습입니다.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모습

 

▲북한군들의 군기잡기인듯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상륙작전이후 정비하는 유엔군모습

 

▲시험발포하는 유쾌한 미군들

 

▲알수없는 표정을하고있는

 

북한군 포로

 

▲미군병사가 소년을 목욕시키는중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먹을 먹고 얼굴표정이 굳어있습니다.

 

▲1951년 수원성에서 헬리콥터를

 

수리하는 모습

 

▲1950년 9월 15일

 

기함 마운트 매킨리 함상에서 상륙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

 

▲1952년 부산

 

전쟁중이지만 소풍을 가는 여고학생들

 

▲1951년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남대문시장

 

▲한국전쟁 6.25동란 당시

 

부산의 오랜 중심거리인 중구

 

대청로와 국제시장과 부평시장이만나는 지점인

 

보수동의 계단 아래 책방골

 

▲장기자랑인지 위문공연지 헤깔리네요

 

▲우유죽을 배급받는 아이들

 

얼마나 배가 고플까요,.

 

▲북한군을 잡아둔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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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지도로 한눈에 보는 6.25 한국전쟁

 

한국전쟁 새벽남침에 앞장선 조선족들

 

한국전쟁 중공군의 1 ~ 7차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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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전쟁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미군지도로 정리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위해 배치된 최전선사단

▲ 1950년 6월 26일~7월 5일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동시에

 

한국전쟁이 개전

 

파죽지세로 밀고 남침하는 북한군과

 

일보에서 급파한 스미스 부대.

 

▲ 전장이 되어버린 한반도

 

▲ 1950년 7월 6일 ~ 14일

 

관동 - 상주 - 대전에서 반격시도

 

▲ 1950년 7월 15일 ~ 23일

 

낙동강까지 밀고들어온 북한군

 

▲ 1950년 7월 24일~8월 01일

 

그 유명한 낙동간전선의 형성

 

▲ 1950년 8월2일 ~ 13일

 

반격의 서막 통영상륙작전

 

▲ 1950년 68월 25일~9월4일

 

정말 나라가 망할뻔한 열흘간 서해에서

 

해군력이 제해권도 되찾고 상륙지점을

 

찾으려 엄청 노력하였습니다.

 

▲ 1950년 9월 4일

 

중국 뤼순(포트 아서)에 소련 해군기지

 

▲ 1950년 8월~9월

 

대반격 인천상륙작전

 

▲ 1950년 9월5일~30일

 

겹겹히 둘러쌓인 북한군의 전선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여 북한군의

 

허리를 자르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전개도입니다.

 

월미도에 가보면 이곳이 당시 작전지라고

 

안내판이 있습니다.

 

▲ 1950년 10월 1일~26일

 

10월1일 38선을 돌파한 국군과 유엔군

 

국군의 날 유래이기도 합니다.

 

10월 19일 평양

 

▲ 1950년 10월2일~11일

 

동해에서는 원산을 회복

 

함경도를 북한에서 해방시킵니다.

 

▲ 1950년 10월27일~11월25일

 

압록강과 두만강 그리고 백두산까지

 

진격하는 중입니다.

 

▲ 1950년 11월26일~12월11일

 

조선족을 압세운 중공군의 전쟁개입으로

 

국군과 연합군은 후퇴합니다.

 

▲ 1950년 12월 03일

 

장진호전투

 

끝없는 인해전술로 진격하는 중공군

 

▲ 1950년 12월 10일~24일

 

흥남철수

 

▲ 1950년 12월12일~51년1월15일

 

흥남철수 여정과 남으로 후퇴하는전선

 

▲ 1951년 1월16일~4월20일

 

재반격하는 국군과 연합군

 

서울을 재수복하고 38선지역까지 전개합니다.

 

슬슬 전선이 교착됩니다.

 

▲ 밀고 밀리는 두세력

 

슬슬 교착상태와 1차대전 참호전만큼

 

정말 치열한 수많은 고지전 전투에 시작.

 

▲ 1951년 4월21일~6월30일

 

중부전선

 

북한군은 자신들이 밀릴때 협상을하자고 하며

 

장소도 자신들이 밀리는 지역을 선정해서

 

협상장소에서 전투가 크게 일어나면 안되니

 

그 동안 역습할 채비를 갖춥니다.

 

▲ 1951년 7월~52년 2월

 

도서지역을 탈환하는 국군과 연합군

 

덕분에 휴전당시 평안북도 인근까지

 

한국령 섬지역이 대부분이였습니다.

 

▲ 1952년 3월 ~ 53년 2월

 

교착상태

 

산봉우리 하나가 하루에도 주인이

 

수차례 바뀌고 그만큼 시체더미

 

산더미만큼 쌓였습니다.

 

▲ 1953년 3월 ~ 7월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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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끝없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한국전쟁 남침에 앞장선 조선족들

 

한국전쟁에 영예로운 죽음 "해피벨리"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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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한은 수없이 남파공작원들을 보내며

 

많은 정보를 빼어갔거나 지금현재도

 

수많은 형태로 공작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북한 대남공작기구들의 주 임무

 

전면전을 막고 대한민국 내에 꼭두각시 정당을

 

만들어 집권토록 지원하며 대한민국내의

 

여론을 분열하고 남남갈등을 조장하여

 

통일전생시 남한이 분열될 수 있도록합니다.

 

간첩을 직접 잡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간첩들은

 

평범한 사람들에 눈에 띄어서 잡힐 확률은

 

0.00001%도 안됩니다.

 

지금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국가 정보원 방첩부서 요원분들이 대신해

 

노력해주고있으니 응원해드리는게 애국입니다.

 

 

 

 

 

각가 작전부와 35호 조사실, 정찰국과

 

국가안전보위부가 설치되었지만

 

2009년부터 개편되어 노동당 예하 작전부와

 

35호 조사실이 정찰충국 예하 1국과 5국으로

 

각각 편입되었고 군의 정찰국 기능을 흡수해

 

2국을 편성하였습니다.

 

 

1. 국가안전보위부

 

 윗동네에선 보위부라고 불립니다.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김정은 직속기관입니다. 

 

김정은 직속인 만큼 아무런 법적인 근거 없이도

 

 용의자를 체포 및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버릴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부서입니다.

 


주 임무는 정치범 색출 및 반국가

 

반 김씨일가 색출 및 체포, 대간첩 활동입니다.

 

일종의 비밀경찰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최근 원정화 사건같이 탈북자에

 

남파 간첩을 섞어 내려보내는 등

 

 해외 첩보 수집에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2009년 이후로 대남 정보수집업무가

 

추가된걸로 추정됩니다.


중국쪽에서도 탈북을 돕는 브로커나

 

남한 인권운동가를 감시하는 공작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측 정보기관 요원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부서중에 하나입니다.

 

편성

 

제1국

 

제2국 유럽, 아시아, 등의 정보를 수집.

 

제3국

 

제4국 해외공작 담당

 

제8국 일본 출신 북송 교포들 담당


국가안전보위부 진입로로 추정되는 위성사진

 

지하로 통해 들어가는 연결로가 보입니다. 

 

 

현재 보위부장은 김원홍입니다.

 

1945년생이이며  김일성종합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보위사령관을 지내고

 

 군 대장출신으로 2012년부터 임명되었습니다.


 

 

2. 정찰 총국

 

역시 국방위 예하의 기관으로 2009년에

 

 작전부와 35호실을 흡수하여 정찰국에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령부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부서라 

 

남측 방첩기관들이 주로 상대하게될 부서입니다.


해외공작을  주로 담당하고, 공작원 양성, 침투,

 

 정보수집, 사보타지, 암살, 납치, 테러 등

 

 전형적인 대남도발업무를 수행합니다.

 

대남도발 공작 뿐 아니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북한 지도층의 자금 세탁및 밀수업무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공작인지라 북한 자금흐름

 

 파악을 위해 우리 정보기관들이 유심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정찰국시절에는 아웅산 폭탄테러

 

96년 강릉 무장간첩 침투사건

 

황장엽 암살미수사건 등이 있고 

 

최근의 경우는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폭침사건

 

 그리고 DDoS공격을 주도한 부서도

 

정찰총국 으로 추정되고있습니다. 


주요 편성

 

제1국(작전국)간첩의 양성 및 침투를 담당.

 

과거 조선노동당 작전부의 임무

 

제2국(정찰국) : 납치, 암살, 폭파 등의 테러를 담당.

 

 과거 정찰국의 임무.

 

제3국(해외정보국) : 대한민국 및 해외의 정보수집.

 

과거 35호실의 임무.

 

제5국 : 남북대화 관련업무(확실하지 않음)

 

제6국(기술국) : 사이버 테러와 침투장비 개발

 

 

현재 정찰총국장은 김영철입니다.

 

1946년생이고 역시 인민군 대장 출신입니다.

 

 량강도 출신이라고 합니다.

 

 


3. 통일전선부

 

우리나라로 치면 통일부 같은 부서입니다.

 

대남연락 업무를 담당합니다.

 

 근데 뒤로는 대남 비밀공작 업무도

 

수행하는 통수치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주로 유학생들 선전, 선동, 대남비방방송

 

삐라등의 선동업무와 90년대에는 남한내

 

고정간첩들을 침투 공작원과 접선시켜

 

안내하는 '안내원' 역할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주요 침투전술과 소유장비는

 

특별취급/대외비인 관계로 언급하지 생략합니다.


공개적으로는 남북대화때 가짜 직위, 가명을

 

내세운 대표들로 대남 언론공작등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정찰총국과는 다르게 정치적 영향력이 크고

 

대남공작에 미치는 영향력도 큰편입니다.


편성

 

직접침투과 : 간첩의 우회 침투 담당

 

남북회담과 : 남북회담과 교류업무 담당, 친북 및

 

이적단체, 종교단체 이용한 교류 담당

 

해외담당과 : 해외의 반한단체 육성 및 공작담당

 

 

2007년 이후로 김양건 부장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4. 대외연락부(225국)

 

내각 산하지만, 아까 말한 통일전선부의

 

 지휘통제를 받습니다.

 

주 임무는 대한민국에 지하당을 구축하고

 

 간첩이나, 그 조직을 관리합니다.

 

그 외에도 사회혼란이나, 반 북한 인사들에

 

대한 테러 및 암살을 실시합니다.

 

 


아까 침투경로는 대외연락부 소속 안내조 요원들이

 

유도한 경로로 침투하여 간첩활동을 실시합니다.

 

왕재산 사건이나, 문세광 저격사건도 이 대외연락부

 

소속 요원들의 공작으로 이루어진 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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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간첩들을 잡는 대한민국 방첩기관

 

한국전쟁 새벽남침에 앞장선 조선족들

 

베일벗은 대한민국 지하벙커 9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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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언제나 전세계 특수부대 순위 세손가락

 

안에 꼽힐정도로 유명하고 막강한

 

러시아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즈에

 

구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스페츠나즈는

 

Войска Специального Назначения

 

(특수임무부대)의 약자를

 

영어로 발음한 것으로서,

특정부대의 명칭은 아니고, 모든 러시아

 

특수부대를 통칭하는 대명사입니다. 

 

스페츠나즈는 여러부대가 있는데

 

크게 세 기관에 소속되어있습니다.
 

 

FSB나 SVR 정보부소속

 

미국으로 비교하면 FBI나 CIA소속

 

특수부대입니다.

 

대표적으로 알고있는 그룹 알파가

 

FSB소속이며 그 외 빔펠,카스카트,제니트

 

오메가 등도 FSB소속입니다.

 

이 부대는 보통 러시아내에 테러를

 

방지하고 진압하는 역활을 수행합니다.

 

 

그룹 알파는 러시아 특수부대하면 떠오르는

 

얼굴마담부대입니다.

 

모스크바에서 현대그룹직원들이 탑승한 버스가

 

납치 당했었을 당시 순식간에 진압하여

 

국내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위에 사진처럼 멀티캠 위장복

 

옵스코어 헬멧등 서방장비의 적극적 도이으로

 

미군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SVR(해외정보국)소속 스페츠나즈 자슬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극비부대 또는 암살부대로

 

총 300명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알파,제니트,빔펠 등 난다긴다하는 특수부대

 

중에서 뛰어난 대원들만 뽑아 간다고 합니다.

 

 

경찰소속 스페츠나즈도 있습니다.

 

이들은 MVD(내무부)소속으로 그냥 SWAT

 

이라고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대표적으로 폭도진압으로 유명한

 

OMON이 있습니다.

 

 

러시아 시위뉴스에서 자주 본 복장일겁니다.

 

이들이 바로 OMON입니다.

 

뜻은 특수기동타격대라고 보시면됩니다.

 

폭도진압도 하지만 러시아내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도 많이 잡아들입니다.

 

 

그 외에 SOBR(특수신속대응팀)부대도 있는데

 

잘 안알려져있었지만 최근 첨단장비로 무장한

 

사진들이 널리 퍼지면서 화제가 된적이있습니다.

 

그 외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탸지란 부대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방부 소속 특수부대는

 

육,해,공에 따라서 나뉘는데 대충 잘알려진

 

총정보국(GRU)직속인 스페츠나스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그냥

 

스페츠나스GRU라고 부릅니다.

 

▲러시아 공수군(VDV)소속 45연대 특수여단

 

VDV는 미해병 수색대와 비슷하며

 

공수군사령부의 명령을 받지만

 

GRU의 명령을 받기도 합니다.

 

GRU는 러시아연방군 직속 정부라 더

 

상급부서이기때문입니다.!

 

이상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즈에 구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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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대한민국 특수부대 TOP6

 

인간한계를 뛰어넘는 특수부대훈련

 

2016 전세계 특수부대 순위 TO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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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 한때 유럽을

 

정복했던 독일은 영광은 불빛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영,미군을 중심으로한 연합군과 소련군이

 

나치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월 마침내 소련군은 독일의

 

'동 프로이센(동 프러시아)'지역까지

 

밀고 들어오게 됩니다.

 

 

동 프로이센은 독일제국의 발원지로써

 

그 존재는 게르만 족의 자존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1945년 1월 해일처럼 밀려오는

 

소련군을 앞에두고 자존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동 프로이센을 지킬 병력도,장비도,전략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945년 1월 독일군은 자신의 모든 여력을

 

서부전선의 '발지 대전투'에 집중하고있었는데

 

벨기에의 아르덴느 지역에서 서방 연합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그들에게서 휴전을

 

끌어내겠다는 히틀러는 꿈을 꾸고있었습니다.

 

그리고 동 프로이센 지역은 말그대로

 

철저히 버려지게 됩니다.

 

 

동 프로이센 주민 수백만명을 대피시킬

 

시간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는 그런 상황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게르만 민족의 자신심인 제국의 발원지가

 

하등한 러시아인들에게 짓밝혀버린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라 생각을하고

 

그냥 내팽겨쳐버렸습니다.

 

 

인류 전쟁 서사시에서 이민족 군대의

 

여성강간은 흔히 찾아 볼수 있습니다.

 

삼국지와 수호지로 대표되는 전란이 끊이지

 

않던 고대 중국 역사에도 수십~수백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몽골군대의 유럽침공에서도 수십~수백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했다는 기록을 찾아볼수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글로 기록되었고

 

또 시간이 너무 오래지났기때문에 사람들은

 

그 끔찍함을 알수는 없었습니다.

 

1945년 1월 수백만의 동프러시아 여성은

 

그 잔인함으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비극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군복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국민돌격대들이

 

방어하는 방어선은 전차 수만대로 밀고 들어오는

 

소련군대를 막아내는건 불가능이였습니다.

 

불과 30분도 안되서 방어선이 뚫려버렸고

 

그 순간 동 프로이센 여성들의 운명은 지옥으로

 

떨어져버린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00만명이나 되는 여성이

 

붉은군대에게 강간을 당하게됩니다.

 

 

더군다나 그 강간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는데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든 백말 무성한 노인이든

 

그것이 '여성'이라면 무조건 붉은군대의

 

강간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야 말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강간의 장이

 

펼쳐진 것입니다.

 

 

붉은 군대의 정치장교들은 이러한 병사들의

 

강간을 용인, 심지어 부치기기까지 했다고합니다.

 

훗날, 베를린 전투 중반부터 강간은 엄격히

 

금지하기는 하였으나

 

'적들의 여인에게 수치심을 안겨라'

 

이 말아래에 수도 없이 많은 독일 여성이

 

붉은군대에게 강간을 당하고 맙니다.

 

 

소련은 독일의 침공으로 인하여 전쟁에서

 

최소 2000만명의 인명을 잃었습니다.

 

기아로 인하여 인육을 뜯어먹으며 '복수'라는

 

단어를 수백,수천,아니 수만번씩 머리에

 

되새기면서 그날만을 처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린 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거대한

 

복수극의 서막이 오른것이였습니다.

 

 

지도자를 잘못만났다는 이유로 독일 여성들은

 

이 잔인하고도 처절한 복수극을

 

감내해내야만 했습니다.

 

동 프로이센에서의 복수극 이후 서방 연합군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나

 

사실상 형식적인 것이었을뿐

 

그 누구도 이 이야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60세 이상의 독일 노인들 중 10%가 소련군

 

강간에 의해 태어났으며

 

또한 10만명의 독일 여성이 전후 강간

 

휴유증으로 인해 자살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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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패배한 히틀러의 실수

북한김정은의 기쁨조 진실8가지

 

악랄했던 독재자들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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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실제 간첩들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임무를

 

띄고 남파되고 시위를 선동하는듯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 국정감사(이철우 의원)자료에서는

 

2003~2013년 10년간 24명의 한국인이

 

북한간첩에 의해 포섭되어 협조하거나 정보를

 

누출하였으며 그 외에도 30여명의 한국인이

 

북한 이외의 국가에 포섭되어 협조했음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문제는 예전처럼 철책경계를 뚫고 남파하는

 

간첩들이아니라 탈북자 사이에 끼어서 남파를

 

시키기 때문에 더욱더 문제가 되고있습니다.

 

그렇기에 불철주야 매일매일 음지에서

 

우리 방첩기관 요원분들이 잡아들이고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교육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탈북한 여간첩 원정화

 

그렇기에 대남공작에 맞서는

 

대한민국 방첩기관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방첩기관들의 주 임무는 말 그대로

 

외국의 공작원이나, 간첩을 식별하고

 

수사를 실시하고, 대응책을 세우는것입니다

.

요즘은 대정보(Counter-Intelligence)라는

 

 말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간첩이라고

 

 밤에 몰래 돌아다니면서 담넘고,

 

무성무기로 암살하고 그럴것만 같지만

 

꼭 그런것만 있는건 아닙니다.


정보요원의 종류는 두가지로 나뉘는데

 

화이트와 블랙입니다. 


화이트는 말그대로 자신의 정체를 합법적으로

 

밝히고 활동하는 정보요원들을 말합니다.

 

대사관/영사관 직원, 주한국방무관, 문화교류원

 

 주재원 등등 여러 직함을 달고 적법한

 

 입국절차를 밟고 국내에서 활동을 합니다.

 

 

 

이건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다 보내기 때문에

 

방첩기관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법적인 정보수집은 못한다는겁니다.

 

우리 군의 방첩업무규정에도 현역군인이

 

 외국인(국방무관)을 접촉할 경우 접촉전에

 

보고하고, 접촉 후에 접촉결과를 작성해서

 

 보고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블랙은 화이트의 반대입니다.

 

신분을 위장하고, 초법적인 활동을

 

 통해 공작을 실시합니다.

 

발각될 경우 본인신상은 그렇다 치고 해당국과

 

 블랙요원 파견국의 관계가 파탄나는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무조건 모른다고

 

 할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런사람은 모른다! 이런식으로

 

상대국에서 알면서도 증거가 없으니

 

 해당국 법으로 처벌하거나, 냉전시대의 경우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보낸 블랙들이 많아서

 

포로교환처럼 스파이들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블랙들을 활용한 공작의 경우는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공작계획이나, 공작원의

 

신분은 철저히 보호가 됩니다.

 

우리 군의 경우 이러한 공작계획은 1급비밀로

 

 분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블랙들이 화이트보다 수집효율이

 

더 좋거나 그런건 아닙니다.

 

CIA의 경우 일일주요정보의 80% 이상이

 

 공개정보출처에서 나오고  70년대 소련의 신형

 

 T-72정보를 캐려고 CIA 영국 SIS에

 

 정보요구 넣엇다가 퇴짜맞을때

 

 프랑스는 당당히 주 소련 국방무관을

 

통해 T-72구경시켜 달라고 해서

 

상세스펙을 얻어낸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방첩기관들은 이러한 화이트와 블랙의

 

 활동을 주시하며, 이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는

 

 기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군, 국가기관, 산업체 등의

 

내부기밀 유출 방지, 가장 중요한 휴민트

(HUMINT : 인간정보)

 

요원 관리업무도 수행합니다.


실제로 김대중 시절(90년대 후반) 대북 정보망이

 

한번에 붕괴되었는데 98년에 정보사에서

 

 중국으로 파견나간 현역군인 팀장(중령)이

 

 납치되어 7개월간 실종된적이 있었습니다.

 

7개월 뒤 다시 한국으로 나타났는데, 구타와

 

고문흔적이 역력한데, 본인은 보안규정을 준수해서

 

 아무것도 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국정원 (당시 안기부)에서 다시 심문하여 알아본

 

 결과 이중간첩으로 전향했음을 밝혀냈고

 

전역시켜 버렸습니다. 


이처럼 휴민트 요원들에 대한 관리업무는

 

장히 중요합니다.


 

1. 국가정보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한때는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것 빼고 다 가능하다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엄청났던 곳입니다..

 

1961~1980년까지는 중앙정보부로(중정)

 

1980~1999년까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99년부터는 국가정보원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표어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저 별들이 61년부터 지금까지 사망한

 

블랙 요원들의 숫자를 나타내는데

 

48개라고 합니다.

 

하지만 표어처럼 그들의 이름은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중정의 시작은 1960년 5.16 군사정변으로

 

 부터 시작이 됩니다.

 

당시 혁명정부 보위세력이 없었던 박정희 측은

 

김종필의 주장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앙정보부법을 만들면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CIA를 롤모델로 삼았지만 다른점은

 

 '수사권'을 지니게 됫다는점입니다.

 

 그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남산에서 나왔다고 하면 다들 코렁탕

 

 먹을 준비를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지금의 국정원은 체포하려면 검찰에서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검찰측과

 

업무협조를 통한 체포만 가능합니다.

 

해외의 경우 정보수집업무와 방첩업무가

 

각각의 다른 기관에서 하는 경우가

 

많지만(CIA와 FBI, SIS와 SS)국정원은

 

방첩업무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국정원은 정보수집/방첩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부서로 다른 방첩기관에서도

 

 국정원의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부서인것입니다.

 


 

주 업무는 해외 정보수집, 마약수사, 방첩수사

 

 최근 증가한 사이버테러 위협 수사 등입니다.


국정원의 정확한 체제는 공개되지 않고

 

가명이나 숫자로 공개된 경우가 많아 무슨일을

 

 하는지 알수가 없는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원들의 경우 국정원을 '회사'라고 부르고

 

스스로를 회사직원 계급에 부르고 있습니다.

 

영화 '회사원'中

 

예를들면 김00 차장 등등 


방첩엄무 파트의 경우 

 

국정원 2차장 예하의 대공수사국 예하에 수사국장

 

수사단장, 수사팀장을 두고 수사팀에서

 

 1개의 간첩사건을 맡는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굵직한 간첩검거는 2010년의

 

흑금성 사건입니다.

 

 

 현역 소장이 체포될정도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간첩수사에는 대개 1년 안밖의

 

준비기간이 소요됩니다.

 

 한개 팀이 꼬박 1년 정도 정보수집에만

 

 메달리는겁니다.

 

증거가 충분하다고 해서 바로

 

잡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간첩도 팀을 이뤄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팀원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관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정보사 공작관 출신으로 안기부 대북공작요원이던

 

 암호명 흑금성이 북한에 이중간첩으로 포섭되어

 

우리군의 교범, 교리, 그리고

 

작전계획 5027의 일부를

 

 북한으로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현역 소장도 이때 엮여서 체포되었습니다.


 

 

2. 국군기무사령부 

 

 

 

슬로건은 충성, 명예, 정의

 

사실 군 내에서 기무부대의 영향력이

 

 쎈건 사실입니다.


1948년 조선경비대 정보처에서 시작됩니다.

 

후에 육군, 해군, 공군의 보안부대를 통합해서

 

 1978년 국군기무사령부로 출발하게 됩니다.

 

국방부 직할부대로, 부대장은 중장이 맡습니다.

 

 

 

 중장 의전서열은 합참차장에 이은 2위에

 

 해당되며 의전상 위에 9명밖에 습니다.


주요 업무는 군사보안업무지원, 군방첩지원,

 

사이버보안, 군사첩보수집, 방위산업체에

 

대한 보안지원과 방산스파이 색출업무입니다.

 

하지만 기무사 업무중 가장 꽃은

 

 '대전복방지'임무입니다.

 

이말은 군사쿠데타 방지라고 보면됩니다. 

 

실제로 전두환 전대통령이 기무사령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성공할수 있었습니다.

 

기무부대원의 파워가 여기서 나오는겁니다.


사단급의 경우 사단장은 투스타고,

 

사단지원 기무부대장의 경우 중령이지만

 

거의 동급의 파워를 자랑합니다.


실병력을 쥐고있는 지휘관들의 동향을 파악해서

 

장관 및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군들이 모이는 행사에는 의례 검은양복 입은

 

 사람들이 동석하는데 그사람들이 기무부대원입니다.

 

전 기무사령관 출신의 인터뷰를 보면

 

자기가 투스타때 한 말이 정확하게 기록된걸

 

자기가 기무사령관 되고나서 알았다고

 

 할 정도니 어마무시 합니다.

 

편제는 기무사령관 아래 참모장 준장이

 

 있고 3처 6실 1단이 있습니다.

 

각각 처에서 정보, 보안, 방첩업무를 담당하고

 

그 예하의 각각의 기무부대가 있습니다.

 

제일 큰 5개의 부대가 100, 200, 101, 102, 103

 

기무부대이고 어디를 지원하는

 

부대인지는 생략합니다.
 

기무부대원들도 자기들을 부를때는 사회 직급을

 

 이용해 xx과장, 00계장 이런식으로 부릅니다.

 

 


 

 

3. 경찰보안수사대


 

각 지방청 보안수사대(대공수사대)도

 

방첩업무를 수행합니다.

 

주로 국정원과 업무협조를 하거나,

 

 아니면 신고를 받고 자체적인 공작계획을

 

수립하여 수사를 합니다.

 

▲이런식으로 주민신고가 들어오면

 

 공작계획을 수립하여, 신상조사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누굴 만나는지, 어떤 대화를 하고 인터넷엔

 

 어떤 글을 쓰는지. 그러고 혐의가 입증되면

 

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는겁니다.


보안수사대 소속 경찰관들은

 

 타 경찰부서와 많이 다르게 활동합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경찰 직급대신

 

 회사 직급을 사용합니다.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보안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 다른 수사부서와

 

 별도로 활동하는 양샹을 보입니다.


 

이상으로 북괴 간첩들에 맞서는

 

우리 방첩기관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위에 내용은 공개된 정보를 통해 보안에

 

위배되지 않는선에서 작성하였습니다.

 

 

 

 

간첩신고는 국번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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