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을 계기로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나갔습니다. 분단 과정을 거치면서 대한민국과 북한은 치열한 첩보 활동을 벌였습니다. 1950년 이후 남북한 곳곳에서 활동했던 간첩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이들은 정보 수집, 반정부 지하조직 구축, 요인 살해, 납치, 파괴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정확히 대한민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간첩이 활동했는지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간첩으로 오인당하거나, 정권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사건도 있기 때문에 검거된 간첩 숫자 역시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국정원 <검거 간첩 연도별, 기관별 통계> 등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검거된 간첩은 4495명에 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에 침투시킨 요원은 생환자 포함 1만1273명입니다. 물론 북한이 보낸 남파 간첩의 경우, 검거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파 간첩의 숫자는 주로 1950년대(1674명), 1960년대(1686명)에 집중돼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입니다. 1970년대에 검거 간첩은 681명으로 줄어듭니다.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했던 1980년 대에는 340명,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에는 114명의 간첩이 검거됐습니다.

 


표면적으로 1970년대 들어서 검거된 간첩이 줄어든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과 중 하나인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전 세계적 해빙 무드에 맞춰 남북한의 관계도 다소 개선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976년 이후 간첩으로 자수하거나 체포, 사살된 사람은 약 700명인데, 그중 침투 단계에서 사살된 사람이 130여 명이었습니다. 검거된 직파 공작원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재일교포, 해외 취업 등을 통한 우회 간첩 사건이나, 월북자 가족 관련 간첩 사건, 납북 어부 간첩 사건 등이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지만 1974년 무려 47명을 검거해 3명을 사형시켰던 '울릉도 간첩 사건'은 재심 법원에서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41년만에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문제는 무죄를 확정받은 5명 가운데 3명은 이미 숨졌으며 한명은 1977년 사형이 집행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숱한 간첩 조작 사건의 진상이 더디지만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중입니다. 


 


황장엽이 간첩이 5만명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황장엽은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간첩을 잡는게 어렵지만 대한민국에서도 1년에 간첩 10여명, 협조자 3~5명 정도는 꼬박꼬박 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국정원의 경우 간첩사건 하나당 5~8명 정도의 부서를 구성하며 2,3년씩 한 간첩을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도청, 미행 등 초법적인 감시수단, 주민등록 기록 등 정부 차원에서나 얻을 수 있는 개인정보를 동원합니다.

 

대한민국에서의 간첩신고는 국번없이 111(국가정보원), 112(대한민국 경찰청), 1337(국군기무사령부)으로 가능합니다. 간첩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내색하거나 떠보지 말고 간첩신고를 해야합니다. 다만 요즘에는 첩보전이 점점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간첩을 판별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입니다.

 

전역은 기나긴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이 기다리는 날입니다. 온 세상이 다 자신의 것 같이 느껴지는 인생에 있어서 몇 안되는 날 중 하루이며 이날의 기분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전투복을 A급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나서게 됩니다.

 

백령도 6여단 전역해병 환송모습

 

부대에 따라 다르지만 병사들이 전역할 때마다 그 전역자가 속해있던 중대/소대/분대원들과 간부들이 나와서 위병소까지 2열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선 다음 그 사이로 전역자들이 지나가면서 위병소까지 이르게 하고 전역자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등 성대한 환송의식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군대에서 전역은 그 동안 고생했던 병사를 축하해주는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게 전역날만 되면 눈물이 흐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쉬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전역하는 중국 군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중국은 법률상 징병제 국가입니다. 18세 이상의 남자들은 원칙적으로 현역 입대를 하게 되어있지만, 워낙 많은 인구로 감당이 안 되는 관계로 실질적으론 모병제 혹은 지원병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역에 있는 중국군이 약 230만 규모이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민병(한국의 예비군과 비슷한 개념)으로 병역 이행을 대신합니다. 

 

견장을 떼어내는 것은 곧 군인으로서의 생활과 이별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중국 청년들은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사실상 중국에서 가장 공무원이 되기 쉬운 방법이 바로 (특히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가 무사히 제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체력검정이 대단히 엄격하며, 지원자 중 안경을 쓴 사람은 무조건 탈락시킬 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찰지원생처럼 가산점을 더 받기 위해 무술을 익히는 사람도 많고, 소림사의 수련생 대부분도 군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렇듯 중국 군인은 경쟁률도 꽤 높아 인기직종이라 할수 있습니다. 군인이 되면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과 함께 여러 가지 혜택이 많을 뿐 아니라 향후 취업에서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근무라도 무사히 제대하면 무조건 공무원 자리가 보장되며 당원 가입도 수월하다고 합니다. 퇴역장교들의 대접도 굉장히 좋으며, 국영기업체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군 복무 중에 상당한 봉급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좋은 근무 환경때문인 걸까요? 중국의 전역하는 군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눈물을 흘립니다. 한편으로는 청년들이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든 점은 중국이 부럽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기치로 내걸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미국 중심의 거대한 미사일방어망(MD)에 편입되기보다는 독자적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북한의 6차 핵실험 가능성과 북핵 폐기 방법을 언급하면서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다""핵연료를 미국으로부터 구입해야 하는데 한미 간 원자력 협졍에는 이것이 안되게 돼 있다.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핵잠수함 건조계획은 2003년 노무현 前대통령 당시 362사업으로 비밀리에 착수했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우리 해군은 벌써 핵 잠수함 2척을 확보했겠지만 아쉽게도 362 사업은 1년 여 만에 종료됐습니다. 비밀 사업이었는데 한 언론의 보도로 외부에 노출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우리나라가 핵잠수함 도입을 위해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핵잠수함을 운용하려면 연료로 쓸 농축도 20% 이상의 우라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 군이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작년 8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과 달리 수중에서 장시간 운용하기 때문에 SLBM을 탑재한 북한 잠수함을 장시간 추적하고 발사 징후를 포착하는 즉시 격침할 수 있어 북한의 SLBM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무기입니다.

 

 

그래서 핵잠수함은 꼭 갖고 싶은 무기 체계이지만 기술과 국제 정치역학 등의 문제로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핵 잠수함을 끌고 갈 초정밀 소형 원자로를 개발할 능력이 없고, 미국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핵 잠수함 보유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핵 잠수함을 포기하기엔 북한의 위협 뿐 아니라 주변국의 핵 무장 속도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중국은 핵 추진 잠수함 뿐 아니라 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전략 핵 잠수함도 건조했습니다. 성능 면에서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우리 해군이 3,000톤급을 보유할 때쯤이면 제법 안정적인 전략 핵 잠수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본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미 잠수함에 탑재해도 손색없을 소형 원자로를 개발해서 수상함에 집어 넣었습니다. 4,000톤급 소류급 잠수함은 언제든 핵 잠수함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변국의 반발 보다는 주변국의 위협을 우려해야 할 처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원전 대국입니다. 원자력을 만지는 기술이 만만치 않습니다. 핵 잠수함의 꿈,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핵 잠수함에 이어 '바다의 사드'로 불리는 SM-3 요격미사일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지스 구축함에 탑재되는 SM-3는 요격고도가 최고 500㎞에 달해 사드(40∼150㎞)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이 사드 대신 선택한 미사일 방어체계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불안한 한반도 정세와 관려해 "저의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막겠다."고 밝히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했습니다. 강력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80살 까지 산다고 했을 때 4,160번의 주말을 맞게 됩니다. 모든 주말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좌우 할만큼 중요하며 성공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훌륭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성공한 사람들은 주말에 무엇을 할까요?

 

1.  주말의 아침을 소중히 보낸다.

 

황금주말의 아침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성공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기상 후 2시간30분에서 4시간 사이에 가장 선명합니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당신을 다른 이들보다 앞서나가게 만들 것입니다.


 

2.  주말에 하고 싶은 계획을 세운다.

 

주말에 갑자기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주중에 하고 싶은 일을 적어둔다면 주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루 목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물론 원기 회복을 위한 휴식 시간은 필요합니다.


 

3.  다음주를 준비한다. 

 

주말은 휴식을 취하며 다음 한 주를 준비하는 날이라고 성공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트위터와 스퀘어 공동창립자 잭 도시는 평일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토요일에는 하이킹을 하며 쉰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반성과 피드백, 전략을 생각하며 다음 주를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직업적인 성공을 위한 비밀 무기가 주말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4.  플러그를 모두 뽑는다.

 

핸드폰, 컴퓨터, 태플릿PC, 텔레비전 등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뽑고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이나 나와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주말 내내 이행하기 어렵다면 단 몇 시간만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5.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빌 게이츠는 “성공을 축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주말은 지난 주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 위한 생각을 하기에 완벽한 시간입니다. 매일 한 줄씩 반성 일기를 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6.  나에게 도움되는 취미생활을 한다.

 

워런 버핏은 20세기 최고로 성공한 투자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버핏은 여가 시간에는 우쿠렐레 연주를 즐긴다고 합니다. 토요일 골프를 치는 것도 인맥 형성과 사업 기회를 얻기에는 좋은 방법입니다. 뜨개질이나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의 유화 그리기처럼 혼자 하는 취미조차도 창의성 발달과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되고, 이는 곧 성공에 도움이 됩니다.


 

7.  꾸준하게 운동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동을 위한 시간을 항상 남겨둡니다.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취미로 카이트 서핑을 하며 인도에서 4번째로 부유한 억만장자는 장거리 마라톤 선수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활동적인 성격을 위해 운동을 합니다. 건강해야 성공도 있습니다.

 

최근 북한은 미국에게 푸에블로호 사건을 잊지말라며 대북제재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으며 최근 탄도미사일 실험 발사는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북한이 압도적인 군사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이러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북한이 자랑스러워하는 푸에블로호 사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68년 1월 21 북한군 특수부대원 30여명이 박정희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대부분이 사살당하고 김신조가 생포된 소위 1.21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1968년 1월 23일 북한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군의 소형 함선이 북한 해군공군의 공격을 받고 강제 나포당하였습니다.

 

 

나포당한 미 해군의 USS 푸에블로 함은 배수량 900t 최대속력은 시속 13노트(24㎞/h)에 불과했으며, 자체 무장은 50구경 기관총 2정 뿐인 정보수집함(AGER-2)이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중무장한 특수부대가 출현하고, 불과 이틀만에 동해에선 미해군 함정이 나포당하면서 한반도 주변 정세는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사실 1950년대에는 북한 해군력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미 해군이 북한 해안을 제 집 드나들듯이 했고 이게 자주 반복되니까 북한 근해를 가더라도 별다른 대비책이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측은 초계정 4척으로 푸에블로 함을 사방에서 포위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고 미국 전투기가 구출하러 올 것에 대비해 MiG 전투기까지 출동시켜 원상항까지 끌고간 것 입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이 진행중이었는데 사건 발생 1주일 뒤 베트남에서는 베트콩테트 공세가 개시되었으니 엎친데 덮친격이였습니다. 그래도 미군 베트남 전선으로 가려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2척을 원산 앞바다로 보냈으며 핵폭탄을 실을 수 있는 B-52 전략폭격기와 F-105 전투기 수십대를 미국과 일본에서 오산과 군산공군지로 옮겨 전진배치했습니다.

 

하지만 인질이 한두 명도 아닌 82명이나 잡혀있으니(승조원 83명 가운데 나포 과정에서 1명이 총격으로 전사)섣불리 건드리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함장 버처 중령 이하 푸에블로 함 승조원들은 공개적으로 세계 각국의 기자단 앞에서 북한 영해 침범과 북한에 대한 해적 행위를 자백하는 문서에 서명했으며 미국 정부도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런 굴욕 끝에 미국은 그나마 미국을 위해 싸운 군인은 반드시 고향에 돌려보내며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거둬들인다는 원칙은 지킬 수 있었으니 나포 11개월 뒤인 196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비로소 승조원 82명과 전사자 시신 1구는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푸에블로호 사건에서 보여준 저자세에 자신감을 얻은 북의 김일성 정권은 불과 열달 뒤인 10월 남한내 해방구 건설을 목표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주일미군의 정찰기를 격추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현재 푸에블로 함은 원상항에 머물러 있다가 있다가 1999년 10월 평양의 대동강변으로 옮겨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있으며 이후 단체관람객이 즐겨 찾는 반미 교육기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푸에블로 함은 미군으로서는 켜주지 안한 상징적 존재이다. 그래서 나포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서 푸에블로 함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고 현역함의 자격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되돌려 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나라도 북한 함정을 같은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의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정, 지난 1996년 9월 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 좌초한 것입니다.  이 잠수정을 타고 침투한 무장공비 25명 중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되고, 11명은 같은 동료에 의해 피살됐으며, 1명은 생포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사과를 요구했으나, 뭉기적거리다 너무나 많은 증거물이 나오자 적당히 외교부가 유감을 표명하는 식으로 사과 아닌 사과를 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살된 북한 공작원들의 유골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좌초된 잠수정은 푸에블로 사건을 참조해서 정동진 근처에 통일안보공원으로 옮겨 안보교육을 위한 전시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히틀러 유겐트는 1922년에 설립된 나치 독일의 청소년 조직입니다. 18세까지의 청소년을 대원으로 하고 대원의 69%는 청년 노동자와 도제, 10%는 상업 관계자, 12%는 학생이었습니다. 1932년 말에는 대원이 10만 명이었으나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한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1934년 말에는 약 358만 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히틀러 유겐트는 나치 독일의 필수 교양이라 할수 있었던 히틀러 우상화 교육을 위한 기관이였으며 '가족애'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꾸는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효과에 좋은 예를 하나 들면 한 평범한 독일 가정의 아들이 히틀러 유겐트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부터 말을 잘 안듣기 시작했는데 이를 야단치자 단검을 빼들면서 자신의 충성은 오로지 총통과 나치 당만을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부모를 위협했다고 합니다.


히틀러 유겐트의 내부는 4단체로 나누어졌습니다.

1. 10~14세의 소년으로 조직된 독일소년단

2. 14~18세의 청년으로 조직된 본래의 히틀러 유겐트로, 18세를 초과한 대원은 나치스당으로 보내졌습니다.

3. 10~14세의 소녀로 조직된 소녀단

4. 14~21세의 여자로 조직된 독일여자청년동맹으로 그 중 17∼21세의 여자는 '신앙과 미(美)단'이라는 특별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히틀러 유겐트는 1936년 12월 이후 독일 청소년 남녀 전원을 강제적으로 조직하는 기관이 되었고, 나치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체육·통치기관이 되었으며, 점차 스포츠나 사상교육보다도 근로봉사와 전시하의 군사보조노동이 중시되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징집 영장의 발송이나 배급카드의 분배 등 간단하고 그리 위험하지 않은 일을 맡았고, 점점 전쟁이 심해지자 군용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이들을 돕거나 고철을 수집하는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말기가 되면서 본격 청소년 의용군으로 각종 전투병과에 넣어 소년병으로 활동시켰습니다. 대공 부대에 입대해서 적군 폭격기를 사격하고 탐조등을 조종했습니다. 무서운건 16세 이하의 어린이도 군대에 갔다는 사실입니다. 1945년에는 아예 군인처럼 취급해서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는 연합군을 상대로 참호를 파고 부상자를 구하고 불을 끄고 전투를 벌이는 등의 고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무조건 총살였습니다.

 

 


그리고 1943년에는 아예 1926년에 태어난 히틀러 유겐트 출신 소년들만을 모아 제12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를 창설했습니다.  1943년 9월 1일 16,000명이 넘는 신병들이 6주간의 기초 훈련을 마치고 SS기갑사단원이 되었으며 나이가 어린 이병들만으로 사단을 구성할 순 없었기에, 아돌프 히틀러 사단에서 장교부사관들을 차출해 배치하였습니다.

 


1944년 4월에는 전략 예비 기갑 부대로서 노르망디 캉 근방으로 이동, 현지 적응 및 지형 숙달 훈련과 사단장의 SS소장 진급 및 36세 생일 축하 파티 등으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맞게 됩니다. 당시 병력 숫자 외엔 모든 장비가 부족한 와중에도, 강력하게 세뇌된 히틀러 유겐트 출신 신병들은 캐나다군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충격적인건 2006~7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히틀러 유겐트 모티브로 나치의 문장만 삼족오로 교체한 삼족오 소년단이 등장했으나 사라졌는지 현재 근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어릴 적에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출신으로 대공포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5월 14일 오늘 새벽 5시 27분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불상의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하였습니다. 비행거리는 700여km로 우리군은 북한군의 도발 동향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계속해서 우리나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사드(THA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문제에 대해 12일 미 국무부는 "한국 새정부와 변함없는 대북 협력을 기대하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은 한국의 안전과 한국민을 (북한의)무력 공격으로부터 지키고 한미 연합군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순전히 방어적 조치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동맹 간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13일 어제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협력프로젝트 회의에 우리 정보 대표단이 베이징에 도착하였으며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드는 북한의 미사일 요격만을 위해 만들어진 탄도탄 고고도 요격체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긴장감이 높아져가는 동북아의 핵우산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방어 체계이므로 특히나 북핵 문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에게는 그 중요도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사드가 배치된 성주골프장 부지

 

사드 1개 포대는 AN/TPY-2 레이더 1기와 6개 발사대로 구성되며, 각 발사대에는 미사일 8기가 탑재됩니다. 모든 구성요소들은 트럭에 얹혀 있거나 트레일러에 실리는 등 차량화가 이뤄져 있습니다. 가격은 포대 1세트에 1조 5천억 원이며 미사일 1발당 11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북한은 징후를 알아차리기 힘든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중거리미사일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 내에 낙하시켜 명중률 향상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 내에서도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여 어떤 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을까요

 

 

일본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1천800억엔(약 1조8천800억원)을 추가 투입해 미사일 방어(MD) 태세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최신예 미사일 방위 시스템 사드를 대신해 육상형 이지스 시스템을 도입하기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섬나라인 일본의 경우 방공 능력과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사드보다 육상형 이지스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미사일 방어 관련 예산을 개량형 지대공 유도미사일 패트리엇(PAC3)를 추가 구입하고 이를 탑재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며 현재 일본 각지에 배치돼 있는 PAC3는 사거리가 15~20㎞였지만 개량형 PCA3를 구축하면서 사거리가 지금의 2배로 늘어날 예정입니다.

 

 

이에 일본 최대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MHI)은 PAC-3 시스템을 개발한 미국 군수업체 록하드마틴, 레이시온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PAC-3 성능 향상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며 이는 일본 미사일 방어체계에서 10여년 만에 이뤄지는 의미있는 성능향상입니다.

 

 

현재 일본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이지스함에 탑재한 요격 미사일 SM3가 최고 고도 500km 대기권 밖에서 적 미사일을 먼저 요격하고 만약에 첫번째 요격에 실패한다면 격추하지 못한 미사일에 대해선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엇(PAC)-3가 지상 수십km 상공에서 쏘아 맞추는 2단계로 돼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육상형 이지스를 가동하면 3단계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이지스함의 미사일방어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예산으로 70억엔(약 730억원)을 배정하기로 했습니다.

 

1942년 생성된 이 선다우너즈(Sun Downers)부대는 1943년 4월부터 7월까지 과달카날 전투에서 55대의 일본 전투기를 격파하였으며 미 해군 항공모함 CV-12 호넷을 모함으로 삼아 이후로도 100대 가까운 일본 전투기를 격추시키고 지상 격파 임무에서도 대활약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에는 개편하여 한국전쟁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이 냉전 종식으로 인해 축소되고, F-14 기종들 역시 퇴역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1995년에 해체되었다가 2006년, 가상 적기 비행대 'VFC-13'이 VFC-111 "Sun Downers"로 재지명되며 재편성, F-5N을 사용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포함한 동아시아권의 시각에서는 전범기인 욱일기를 비행대의 테일 마킹(꼬리날개에 그려진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비행대 사진을 보게 되면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욱일승천기는 1870년 욱일기가 일본 육군의 군기로 지정되었고 1889년 일본 해군에서도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태평양 전쟁에서도 사용되며 현재까지 일본군을 상징하는 깃발입니다.

 

 

어떻게 우리나라의 가장 든든한 군사 우방국이자, 과거 일본제국군과 치열하게 싸운 미군이 적군의 상징을 꼬리날개 등에 당당히 그려넣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일본 욱일승천기는 태양이 완전히 보이는 반면 저 전투기들의 꼬리에 있는 태양은 해가 반만 그려져 있습니다. 선다우너즈란 태양을 가라않히는 이들이란 뜻입니다. 태양이란 두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일본을 상징합니다. 말그대로 이 부대마크는 바로 2차대전 중 일본 욱일승천기(태양이 떠오르는 모양)을 비꼬아서 태양을 가라 앉히겠단 의미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미군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 방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재의 일본이며 수십년의 전쟁때문에 현지에 주둔하는 군대가 공식적으로 현재의 안보 파트너인 일본을 조롱할 목적으로 그런 문양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Sunrise(일출)'이나, 'Sunset(일몰)'을 떠나서, 단순히 'Sunburst'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하며 지금 현재 주일미군 공보실(U.S. Army Garrison Japan Public Affairs Office)에서 운영하는 공식 주일미군 도메인명은 아예 Rising Sun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 모습을 모변 구일본제국해군 박물관에서 주일미군(해군)이 일본군 출신 할아버지에게 강의를 듣는 장면인데, 벽에 걸린 커다란 욱일기가 아주 잘 보입니다. 주일미군은 현재 동맹국이고 과거에나 적이었던 군대의 상징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욱일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북한이 어떠한 이유로 정세가 급변하여 갑작스럽게 붕괴된다면 사실 북한 자체보다도 배후에 있는 중국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점진적으로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혈맹의 개념을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이지만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 개입을 통해서 남북 통일을 막아냈고 한국전쟁의 정전 이후 중국은 주한미군을 핑계로 중국군을 영구 주둔하려고까지 했었습니다.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의 행동은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  북한 붕괴시 중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경우는 매우 희박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이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돌발행동을 할 경우는 중국은 한국편에 서지는 않겠지만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당하기 힘들정도의 돌발행동은 북한이 먼저 한국쪽에 핵미사일을 발사한다거나 대량 민간인 피해를 일으키는 생화학 살상무기등을 사용한다는 정도로 예를 들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적극 군사개입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 접경지역에 대한 차단 조치와 완충지역 확보등은 조용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2.  북한이 붕괴하거나 대한민국을 공격하다가 북진이 이루어지는 경우 북한을 지원한다.

 

중국은 북한이 무너져서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과 직접 국경선을 맞닿아 있는 상황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일정수준이상의 북진상황을 저지하기 위해서 부분적 그리고 제한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지상부대를 직접 파병하는 경우보다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공군력을 간접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부분적으로 미사일등을 발사하여 간접지원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북한 유사상황 발생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판단됩니다.


 

3.  6.25처럼 육해공군을 모두 동원한 전면적인 한반도 개입

 

이 경우는 지상에서는 미사일 공격등을 통해 1순위 타격지점인 공군기지,병참기지,정보망 구성등을 타격하여 북진등을 거부하는 전략과 잠수함등을 투입하여 추가 미국증파병력 과 군수물자 유입을 저지, 공군에 대한 북한 지상군 공격에 대한 거부등을 진행하는 것이 예상됩니다. 또한 지상병력은 대동강 라인까지는 바로 투입되어 최소한 평양선에서 북진을 저지하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경우는 미군과 직접 전투를 치룰수 밖에 없고 양국간에 인명피해도 확대되는등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북한이 우리나라에 생화학무기나 핵을 사용하는 등의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개입할 것이며, 중국은 사실 북한 전역 내지는 최소한 북한의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등 북위 39~40도 이상을 완충지대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MBN에 의하면 원전반대그룹이란 조직이 유출한 문서 중 중국이 제안한 북한 4개국 분할통제안이 공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평양 외곽인 평안남도, 황해남북도를 통치하고, 미국은 강원도, 중국은 함경남도와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를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각각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평양마저도 4개국이 공동 통제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실제 상황일 경우 한국과 미국이 사실상 직접 관리하고 중국과 러시아 측 구역은 과거의 베를린 장벽이 있던 시기의 서베를린처럼 육지의 섬이 될 공산이 큽니다. 미국의 경우 그냥 강원도를 한국에게 나중에 넘겨줄 가능성도 있지만, 그냥 자기들의 관할로 남겨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북한분할안에서 일본은 배제되어 있는데 실제로 일본은 국력 및 북한과 관련해서 한미중러에 비하면 북한 분할에 끼어들어 직접적인 분할 통제는 희박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의 영향력을 고려해서 참관자로써 북한 관리에 간접 참여하여 약간의 이권 정도 지분으로 획득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 할 경우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탄 등을 개발하고 미국에 대해 직접적 타격을 공언하는 등 미국에 위협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2017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러시아나 중국, IS등 이슬람 극단주의의 위협보다 더 긴급하게 대처해야 하는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최우선 안보과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북강경론자들 사이에서 대북 선제 타격 의 실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선제적 으로 북한의 핵시설과 로켓 발사 시설등을 폭격으로 파괴하면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북중 국경이나 남중국해 등에서 병력을 증가하는 등 당분간은 미국과 대치하겠지만 미국의 공격이 일시적이고 핵시설등에 대한 제한적인 타격으로 끝나면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인 교전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아직은 중국의 군사력이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인 미군에 대항할 만 하지도 않고 또 최대의 무역상대국인 미국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대규모 지상군을 북한에 파견하여 북한을 점령하려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중국은 굳이 북한 영토내에 군대를 파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선제 타격 후 북한이 이에 대해 대한민국 수도권에 장사정포와 방사포, 단거리 미사일 등으로 대규모 보복 폭격을 시작하면 우리나라도 반격에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휴전선 군부대 간에 단기적 포격 교환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북한이 진심으로 대량 보복을 위해 포격을 계속하고 이로 인해 수도권에 대규모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면 그러면 결국 우리나라 국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어 북한의 영토에 진입하지 않을 수 없고 전면전으로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일단 남북간 전면전이 벌어지면 휴전선 부근에는 양 군다 워낙 대규모 군사력과 화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고 양 쪽다 대규모의 사상자를 내겠지만 북한의 군사력은 오랜 경제난으로 크게 약화되어 있어서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 국군이 북한군의 서부 전선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평양을 점령하고 통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부전선의 휴전선이 지나치게 수도권에 가까운 것이 안보상의 가장 큰 취약점이므로 이 기회에 개성을 점령하여 휴전선을 개성 이북으로 북상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나라 국군이 개성을 점령한 후 이에 그치지 않고 황해남도 점령에 나서면 대한민국이 북한 전역의 점령을 목표로 하는게 분명해지므로 중국도 북한에 군대를 출동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북한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보고 북한의 영토의 일부를 점령하고 휴전협상이나 평화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적어도 청천강 이북을 중국의 위성국가로 만들고 김정은 대신 친중파 북한 권력을 세워 괴뢰국가로 만들어 북한을 완충지대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당연히 반대하겠지만 미국은 승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매우 강렬한 폭력이 펼쳐지는 공간 속에 던져졌던 사람들, 특히 군인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PTSD는 딱히 사람을 가려가며 발현되는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공병 의무관 심지어는 직접 전장에 나서지도 않는 미군의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조종사중에서 PTSD 환자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 이라크 참전 군인들에게서 폭넓게 PTSD가 나타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랜드 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160만 명의 장병 중 30만 명이 PTSD의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군 또한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로 해군과 함께 연평도 장병들의 PTSD 검사를 실시했으나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몇몇을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이 자체적으로 병사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범한 병사들의 98%는 첫 교전을 겪은 뒤 어떻게든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98%라는 비율에는 전장을 겪은 장교들도 동의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라크 내지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험이 있는 미군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PTSD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잘 보면 PTSD 신고를 한 미군들은 하루에 3번씩 6알의 안정제를 먹어가며 일하고 있으며,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이 당연히 겪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 군인이 40년이 지나서도 악몽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10년 넘게 받고 교회나 절이나 성당도 가고 자살미수까지 겪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론도 되지 않고 묻혔다가 530GP 사건 이후 알려졌으나, 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잊혀졌습니다.

 

 

사람마다 정신력이 다르니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실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PTSD에 걸릴 확률은 최대 50% 정도로,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미군 베트남전 참전용사 중 PTSD 환자의 비율을 가장 높게 잡은 수치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미군 베트남전 참전용사 280만 명 중 최대 150만 명이 PTSD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실제 전쟁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섭고 더 큰 아픔을 남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