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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E. 헤스(Dean E. Hess)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다름아닌 한국전쟁이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내에서는 이승만 정부의 군사원조 요구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미 정부를 갈구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미 트루먼 정부가 구색맞추기용으로 한국 공군을 지원할 제6146군사고문단을 창설하면서 그 책임자로 임명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P-47 전투기 조종사로써 그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한 숙련된 조종사였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군에 남았고, 한국 전쟁이 터지자, 제2차 세계대전과는 다르게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미군에게는 어디까지나 구색맞추기용이었으므로, 그냥 적당히 구색만 세울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부의 의도를 알아챈 딘 헤스 소령은 부하들을 설득해서 이 바우트 원 대대를 끝까지 키워내고 말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물자는 당시 진흙탕이였던 비행장에 착륙한 C-47 수송기 안에 있던 자재들이 다였습니다. 그에겐 방어를 위한 무기조차 충분하지 않았고, 건축 자재는 물론, 잠을 잘 천막의 부품, 심지어는 식량마저 부족한 상황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러 온 제 24 보병 사단에 속한 직속 보급 장교의 도움으로, 비행장을 하나 둘씩 바꿔나가며,  일본에서 올 열 대의 대한민국 공군 소속 F-51과 조종사들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이후 공군 최초의 태극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이근석 대령

 

이근석 대령(준장)의 지휘 아래 열 대의 F-51이 도착하였고, 헤스 소령은 이들을 보조하며 그들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이근석 대령은 남하하는 북한 전차들을 격파하다가 지상과 전면 추락하여 전사하게됩니다. 순식간에 공군 전력 10%를 잃게 된 대한민국 공군, 즉 남은 대원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습니다.

 

 

 

딘 헤스 소령은 그들을 대신하여, By faith i fly, 즉 신념의 조인이란 글을 내달고 직접 출격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의 몇몇 부하들은 그럴 필요가 있냐며 그를 말리고, 또 항의했지만 헤스 소령은 동료 한 명과 함께조종석에 올라 북한군 일개 기계화 사단을 괴멸시키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 후, 그는 여전히 조종사들을 보조하며 '바우트 원' 계획의 완성을 점차 완성해갔지만, 1951년 1.4후퇴 당시 서울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이 고아들을 탈출시킬 방법을 찾았고 여기에 딘 헤스 소령이 합세하여 제주도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수송기들이 흥남 철수에 동원되는 바람에 약속된 수송기가 도착하지 못하였고 딘 헤스 소령 부대 무전기에 긴급 통신이 도착했습니다. 그 무전은 다름아닌 블레이스드엘 중령의 긴급 무전이였습니다. 그의 무전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지금 당장 데려올 수 있는 만큼의 수송기가 필요하다"

 

 

딘 헤스 소령은 즉시 F-51을 타고 김포 공항으로 와서 얼 패트릿지 소장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 패트릿지 소장에 허락으로 다음날 아침 C-54에 올랐습니다. 김포 비행장에는 무려 천 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보육원 관계자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북한군이 남하하자, 블레이스드엘 중령은 위험을 감지하고 명령에 불복종하면서, 해병대의 트럭을 이용 하면서까지 그 많은 아이들을 김포 공항에 데려왔던 것입니다.

 

 

딘 헤스 소령은 그렇게 김포 공항에 도착한 열 다섯대의 수송기를 직접 지휘하며 본인도 직접 비행기에 올라 아이들을 안전한 제주도로 후송했습니다. 964명의 아이들이 그들 덕에 목숨을 구했고,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살아있습니다.

 

 

이 일이 발생한 이후 미군은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을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하려고 했습니다. 사유는 '고아들을 구하는게 군목의 의무가 아니다'라는 것이였는데, 이에 대해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 태도를 고수하였고 다행히 이 일이 기사화되면서 미국 내에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을 칭송하는 여론이 일어나게 되면서 처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딘 헤스

 

그리고 딘 헤스 소령은 1952년에 '바우트 원' 계획을 완성시켰고, 그의 군인 인생 처음으로 진정한 평화에 일조했습니다. 딘 헤스는 후에 "배틀 힘"이란 책을 출판하고, 그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는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레이크는 그를 '거짓된 영웅'이라며, 그가 그러한 일들을 통해 돈을 벌려 한다고 비판했지만, 그로 인한한 수익 전액이 모두 한국 고아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준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2015년 3월 3일에 98세 하늘로 떠났습니다.

▲2016년 3월 4일, 대한민국 공군에서의 1주기 추모행사

 

"By faith, I fly"

"신념에 의해, 나는 하늘을 난다"

"信念의 鳥人"

-딘 E. 헤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5월 28일 고향 함부르크 비행클럽에서 조종을 배운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는 임대한 단발 세스나기로 핀란드 헬싱키를 떠나 교신을 끈 채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비행이 동서 양 진영의 평화를 위한 가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공 비행을 하던 세스나기가 소련 영공으로 들어서자 미그 23기 전투기가 다가왔지만 조종사들은 지상관제소에 스포츠항공기라고 보고했고 지상에서 진짜 비행기인지 커다란 새인지 헷갈리는 마티아스 루스트의 경비행기는 구름 속으로 사라진 뒤 모스크바까지 날아갔습니다.

 

▲당시 상황을 담은 실제 동영상

 

그렇게 저녁 무렵, 구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상공을 선회하던 4인승 세스나 172P 경비행기가 크렘린 궁 앞 붉은광장에 사뿐히 내려 앉았습니다. 레이더 1만여개, 지대공 미사일 1만4천여발이 지키고 있는 철통이라 여겨지던 방공망을 뚫은 경비행기의 조종사는 놀랍게도 19세의 서독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였습니다. 그는 비행금지 구역인 모스크바 상공을 3회 선회하는 여유를 부리면서 소련 시민들이 보란듯이 대놓고 착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몰려온 인파들에 사인을 해주다 KGB에 전격 연행됐습니다.

 

 

이에 소련 당국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서방세계의 경비행기가 최고 심장부인 크렘린 궁의 안방에 내렸으니 냉전시대 소련의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진 건 당연했습니다. 1만여 개의 레이더와 요격전투기 및 지대공 미사일은 조그만 프로펠러 경비행기 앞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19세 청년의 무모했던 비행은 나비효과를 불러왔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개혁, 개방정책에 반대하던 소콜로프 국방장관 등 군부 핵심을 물갈이했고 이는 결국 독일 통일 및 소련의 붕괴로 이어지는 냉전 시대의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영공 침범 등의 혐의로 모스크바 교도소에서 14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친 후 영웅이 되어 귀국한 괴짜 청년 루스트는 영웅이 되어 귀국했지만 여자 동료를 흉기로 찔렀다가 다시 철창신세를 졌고, 이후 포커선수·투자 분석가 등으로 변신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 무장세력 IS와의 전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IS는 현존하는 최대 안보위협이고 이를 파괴하는 것이 미국 이익이라고 트럼프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는 매우 공세적인 IS 파괴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트럼프는 이슬람 무장세력 IS를 어떤 방법으로 파괴할 것인지 예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상부대 강화

 

6 천명의 미국 군대들이 ISIS 공격의 고문 및 특수 부대로 현지에 있습니다. 이것은 2006년부터 2008년 전성기의 15만명 체제와는 큰 차이입니다. 당시 이라크는 붕괴 될것 같은 상황 이었지만 이것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감수 할수 있는 최대 값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정치의 풍향으로 이라크와 시리아 파병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바마는 천명 단위로 미군을 증파하고 최전선 근처에 보내도 효과는 적다고 강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때의 전제는 사라졌습니다. CNN에서는 미 국방부가 12,000명까지 추가 부대를 시리아에 투입하는 제안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ISIS가 자칭하는 수도 라카의 함락 때문입니다. 


 

 

 

    공포식 공습 강화

 

오바마 대통령 당시 2014년 8월 IS 격퇴 작전을 시작한 이래 12만 5000번의 공습을 단행해 IS 전투력의 절반정도를 파괴시킨 것으로 미 국방부는 밝혔습니다. 현재 IS에 대한 공습에는 영국과 프랑스 등 나토 동맹국, 호주와 캐나다, 그리고 요르단과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아랍국가 등 1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미국이 단행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집트 등에게도 보다 강화된 군사공격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하고 부시 행정부 시절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을 때 '충격과 공포'작전과 맞먹는 초대형 공습과 파상공세를 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은 2003년 3월 21일 이라크 침공 작전에서 쿠르즈 미사일 500발 이상과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1,700회나 출격한 엄청난 폭격을 단행해 보름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경험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합동 군사작전

 

IS는 민간인을 이용하는 전술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IS가 이라크 치안 유지 부대에게 대규모 피해가 입힐 수 있었던 것은 약 백만명의 주민이 전투의 중간에 있었던 때문입니다. IS는 미군이 다수의 주민이 있으면 공습을 실시하지 않는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손잡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선후에도 수시로 전화통화를 갖고 IS 파괴를 위해 미국과 러시아군의 합동 군사작전까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측은 러시아와 손잡을 경우 나토 동맹국들로 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미국내에서도 논란을 겪을 수 있으나 IS 파괴가 공통의 목표라는 점을 내걸고 시리아내에서 합동 군사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는 나토 동맹국들과 중동 아랍국가들에게 서로 다른 안보 이익은 일단 제쳐두고 공통의 적이자 최우선 타겟인 IS를 괴멸시키는데에선 모두가 손잡고 정보를 교환하며 합동 군사작전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유세기간 중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하면 미군 지휘부 장성들에게 30일 안에 IS 파괴를 위한 군사옵션을 마련토록 지시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마자 IS 파괴에 총력전을 펼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미 새 IS 파괴 전략을 결정한 것으로 예측됩니다. 

 

포레스탈 함은 미국의 첫번째 Super Carrier급 항공모함입니다. 1954년에 취역하였으며 만재 배수량이 8만톤이 넘고 길이 300m, 비행갑판 72.5m 그리고 85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는 대형 항공모함이었습니다. 이 항공모함은 사상 최악의 참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1967년 7월 29일, 베트남 해역에서 작전 중이던 미국 해군 항공모함 CV-59 USS 포레스탈 함 무장갑판에서 무장을 장착하고 있던 F-4 팬텀에서 갑자기 공대지 로켓이 발사된 것입니다. 발사된 로켓은 마침 구식폭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출격 대기중이었던 A-4 스카이호크의 꼬리 부근에 명중하면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스카이호크가 피격되면서 항공유가 유출되는 동시에 피격의 충격으로 파일런에 장착되어 있던 폭탄이 떨어져 비행갑판 위를 굴러다니기 시작하였고 화재로 달궈지기 시작한 폭탄이 불과 1분 만에 유폭을 일으켰습니다. 원래 폭탄은 유폭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각종 절연체 및 안전장치를 이용해 2분 30초 이상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1분 만에 유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유폭이 벌어지기 전에 불길을 진화하려고 활동 중이던 소방대원들이 전멸했으며, 근처에 있던 승조원들과 함교 후방에 있던 인원들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전문 화재진ㄴ압 인력을 잃은 USS 포레스탈의 불길은 속수무책으로 번지고 있었고 훈련받지 않은 병사들이 바닷물로 화재진압을 실시하였지만 갑판의 반이 화재에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항공유일 경우 물로 화재를 진압하면 안됩니다)

 

 

갑판에 큰 구멍이 뚫렸고 그 속으로 항공유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항모 자체가 기울기 시작하였고 침몰할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배의 연료를 반대쪽으로 이동시키는 등의 빠른대처로 인해 침몰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포레스탈 함에 불길은 이틀이나 계속됐으며 최종적으로 134명 사망, 161명 부상, 항공기 29대 전소, 30대 이상의 항공기 파손, 당시 금액으로 7억 2천만 달러의 피해를 기록한 대참사였습니다. 사후에 조사한 결과 우연과 악재, 인재까지 겹친 최악의 사고로 밝혀졌습니다

 

▲폐기된 항공모함 '포레스탈'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3년 10월 23일 미국 첫번째 supercarrier급 항공모함 '포레스탈'호가 미화 1센트에 텍사스의 폐선 전문처리업체인 올스타메탈에 매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올스타메탈은 포레스탈을 텍사스주의 폐선 처리장으로 이동해 향후 수년간 해체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포레스탈함에 처음모습과 마지막 모습 

 

포레스탈은 퇴역후 박물관으로 이용될 계획이었지만 예산부족으로 결국 고철값도 못받고 매각되고 넓은 태평양 바다에서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1센트라는 말도 안되는 헐값에 팔리게 된것은 해체에 엄청난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