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기독교 등의 종교에서는 하느님에게 대항하는 악한 존재를 악마라고 부릅니다. 악마가 인간 혹은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6세기부터였으며 생김새는 뿔과 꼬리를 가지고 있거나, 콧구멍이 하나만 있거나 아예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눈썹이 없고 두 눈은 접시처럼 생겨서 이글이글 타오르거나 불을 내뿜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계에는 가장 사악하기로 유명한 7대 악마(칠죄종)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사탄(Satan) 

첫번째로 분노를 상징하는 악마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가장 유명한 악마로써 다른 악마들과는 다르게 악의 감정 그 자체로 순수한 악 덩어리입니다. 모습이나 특징이 명확하지 않으나 창세기의 하와를 꼬드긴 뱀과 요한묵시록의 미카엘과 싸우던 붉은 용이 사탄이라고 합니다.


  루시퍼(Lucifer) 

오만을 상징하는 악마 루시퍼입니다. 루시퍼는 타락천사로 정말 유명합니다. 과거 천국에서 수많은 천사를 거느린, 하느님에 가장 가까웠던 루시퍼는 자신이 하느님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미카엘과 싸우지만 결국 루시퍼와 그의 부하 천사들이 패배하고 천국에서 쫓겨나 지옥에 떨어집니다.


 

  마몬(Mammon) 

탐욕의 상징 마몬입니다. 지옥에 있는 만마전(악의 전당)을 건설한 것도 마몬이며, 최초로 인간에게 광산 채굴법을 가르친 것도 마몬입니다. 유일하게 아마게돈을 반대하는 악마인데 그 이유는 천상계를 침략하는 것보다 자신의 궁전에 있는 재물를 지켜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바알제붑(Beelzebub) 

식탐의 상징 바알제붑입니다. 바알제붑는 지옥의 왕이었지만 루시퍼에게 힘에서 밀려 2인자가 됩니다. 고대의 그리스 사람들은 파리를 악령이라고 생각하였고 파리가 앉은 음식을 섭취하면 병에 걸린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바알제붑는 파리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스모데우스(Asmodeus) 

색욕을 상징하는 악마 아스모데우스입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속여서 데리고온 처녀들을 노예로 삼고 끝도없이 자신의 색욕을 채우는 악마로써 사탄과 함께 천국을 도발하는 역할과 신을 조롱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마들 중 유일하게 천국의 도서관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어서 매일 도서관에 출퇴근하면서 일상의 대부분을 공부로 보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레비아탄(Leviathan) 

시기와 질투를 상징하는 악마 레비아탄입니다. 이 악마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루시퍼가 창조해낸 악마입니다. 성별은 암컷이며 루시퍼를 사랑하고 모든 악마를 자신이 언젠가는 먹어 치우겠다고 말하는 질투의 화신입니다.


 

  벨페고르(Belphegor) 

나태를 상징하는 악마, 벨페고르입니다. 벨페고르는 게으름의 상징으로써 유흥거리가 될만한 죄악을 발견한 뒤, 그것을 즐기는 나태의 악마입니다. 원래 모습은 인간과 염소를 합쳐놓은 것처럼 생겼지만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여 남자들을 꼬셔서 노예로 만들어 귀찮은 일들을 시키곤 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위대가 존재합니다. 물론 일본 자위대 전력은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보다 강력합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자위대는 정식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에 특수부대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 입장에서도 전범국이다 보니 특수부대를 만드는 것도 상당히 눈치가 보이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은 1958년 창설된 제1공정단이라는 특수부대가 존재합니다. 참고로 일본은 공수부대를 공정부대라고 부릅니다. 이 부대원은 1,900명 정도이며 2000년대 전까지 일본 유일의 특수부대였습니다. 그리고 2012년 호주에서 개최된 국제사격대회에 참가해 15나라 가운데 14위를 차지하면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국제사격대회에 사격실력이 뛰어난 대원들을 선발한 뒤 5개월간 집중 훈련을 받고 대회에 내보낼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한고 합니다. 현재는 당연히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2017년에도 근접 소총 사격(10m~25m) 부문과 450m 저격, 저격 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하고 저격 부문 종합에서는 1,2위 모두 차지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특전사는 6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거나 자위대에서 가장 뛰어난 대원들은 베일에 쌓여있는 특수부대인 '특수작전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특수작전군은 편성, 장비, 훈련을 모두 델타 포스(티어1에 속하는 미 육군 특수부대)의 지도를 받고 있어 일본판 델타 포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복면을 쓰지 않는 아라야 다케시

특수작전군은 위에 소개한 제1공정단 간부 출신이자 육자대 최초로 미군 그린베레 코스를 통과한 아라야 다케시를 중심으로 2004년에 창설되었으며 제1공정단 병력을 1998년에 델타 포스에게 교육받게 끔 미국으로 보낸 것이 시초입니다.

 

 

그리고 이 부대원 모두는 우리나라 707특임대처럼 훈련이나 작전 시에 얼굴을 가리는데 소수정예인 부대 특성상 테러범이나 적국 공작원들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얼굴이 밝혀질 경우 가족에게도 협박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행사 때 정복을 입고 나올 때도 얼굴을 가리고 명찰을 달지 않습니다.

 

 

부대 자체도 그냥 존재만 알려져 있고 방위성이 공개하는 장비 조달 문건에 이들이 쓰는 것으로 추측되는 장비들이 기록될 뿐 대외에는 무엇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는지 사진은 커녕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어 임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707특임대와 같이 특출날 것이 없지만 만약 이들이 전시에 공격 임무를 맡게 될 경우 대상은 다름아닌 북한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면 유사시 일본으로 날아올 수 있는 미사일 시설에 침투하여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대에 대해 몇년 전부터 베일을 조금씩 벗고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데 떠도는 소문으로는 이들을 보고 온 기자는 '한국의 특전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었지만 그냥 헛소문인듯 합니다.

 

▲당시 추락한 나이트 스토커 소속 헬기 모습

조금 놀라운 건 특수작전군이 미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와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2015년 8월 12일  미군의 특수전 강습 부대인 나이트 스토커 소속 헬기가 오키나와 인근 해상에서 추락해 탑승자 17명 중 그린베레 4명과 특수작전군 대원 2명이 부상 당하였는데 이런 사실을 미군 기지의 오키나와 이전에 반대했던 일본 정치인이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특수작전군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비싸고 실용적이지 못한 자국산 일제 장비보다 실전에서 검증 받은 외국산 무기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일반 자위대원과 같이 89식 소총과 9mm권총을 사용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M4A1 또는 HK416 소총과 USP 권총을 사용하며 이 외에 MP5SD6, M4A1 SOPMOD block 1, M24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외에 일본판 재블린인 01식 대전차미사일과 91식 지대공 미사일 등 대전차/지대공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개발 중에 있는 고기동차량인 고마츠 LAV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 특전사보다 장비는 더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특수작전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적 특수성 때문에 해외 경험이 전무한 건 둘째 치고 국내 사례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가볍게 비교하자면 우리나라 특전사도 크고 작은 실전을 겪어 보았고, UDT/SEAL 같은 경우는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해적들을 모두 제압한 실전 사례가 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특수부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하나 대한민국 특수부대는 세계 최정상급으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날씨가 완전히 풀리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여행들 많이 떠나시죠? 가족여행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패밀리카입니다. 일반 승용차와 달리 패밀리카라면 아이들을 위해 갖추면 좋은 옵션들이 있습니다. 패밀리카에 필요한 10가지 옵션을 소개합니다.


 

1. 뒷자석 쓰레기통

 

아이들과 동승하게 되면 쓰레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쓰레기들이 자동차 바닥에 뒹굴고 있다면 아빠입장에선 속상합니다. 뒷자석에 쓰레기통이 있다면 자동차 실내를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겠죠^^


 

2. 햇빛가리개

 

뒷자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따가운 햇살 때문에 울고 보채는 걸 막기 위해서 일체형 햇빛가리개가 있으면 정말 좋습니다.


 

3. 3열 시트 접기기능

 

최근 출시되는 미니밴에서는 거의 기본적은 사양입니다. 파워폴딩 기능이 있는 경우 단추 하나로 편하게 시트를 접을 수가 있습니다.


 

 

4. 사고 시 부풀어 오르는 시트벨트

 

평소에는 일반 시트벨트와 동일하지만 사고가 나면 에어백이 터지는 것처럼 부풀어올라 가슴부위 전체에 골고루 힘이 전달되도록 해서

충격을 많이 완화해줍니다. 아이들을 태울 경우에는 정말 유용할 것 같습니다.


 

5. 뒷자석 시트벨트 착용 알림

 

뒷좌석에 누가 시트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는지 알려주는 아이콘입니다. 아이들이 시트벨트를 했는지 운전중에 시트벨트를 풀렀는지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6. 유아 카시트 래치

 

유아를 태우려면 유아카시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카시트를 고정하려면 좌석에 설치된 래치에 고정하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시트벨트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래치보다는 아무래도 확실히 고정되지 않습니다. 요즘 출시되는 모델들은 이 래치가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긴 한데 좌석 깊숙이 숨어 있어 찾기 힘들거나 장착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7. 파워 슬라이딩 도어

 

어린아이들이 슬라이딩 도어를 손으로 열기를 바라는 건 상당히 무리입니다. 매번 부모가 내려서 열어주기엔 불편합니다. 파워 슬라이딩 도어가 있다면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편리하겠죠^^


 

8. 후방 카메라

 

후방카메라는 굳이 패밀리카가 아니더라도 모든 차에 필요한 기능입니다. 하지만 가족여행을 다니다보면 아이들이 자동차 주의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패밀리카가 큰 경우에는 주차할 때 많이 부담이 됩니다. 후방카메라가 있으면 아무래도 주차가 훨씬 수월합니다.


 

9. 확장 가능한 2열 시트

 

2열 시트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편의성을 극대화합니다. 조그만 중앙 시트에 유아카시트만 장착한 사진을 보면 이 기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0. My Key

 

다 큰 자녀가 부모님의 차를 빌릴 경우 부모님들은 운전이 미숙한 자녀들의 운전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포드에서 출시된 MyKey라는 걸 사용하면 최대 속도와 라디오 최대볼륨은 제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급 휘발유를 넣으면 연비가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비싼 돈 주고 쓰는 분들 꽤 있습니다. 정유회사들도 그렇게 광고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고급 휘발유가 아닌 일반 휘발유를 주유해도 아무런 이상 없이 주행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기 때문에 고급휘발유를 주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방송 그리고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 국산차는 고급 휘발유 주유한다고 해서 엔진 출력과 연비가 높아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고급 휘발유와 일반 휘발유의 차이는?

고급 휘발유와 일반 휘발유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옥탄가입니다. 우리가 보통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일반 휘발유는 옥탄가는 RON기준으로 91에 맞춰져 있으며 옥탄가가 조금 더 높은 고급 휘발유는 약 100내외의 옥탄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휘발유는 옥탄가를 향상시키는 옥탄가 향상제를 반드시 첨가하는데 옥탄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휘발유의 노킹 성질을 억제합니다.

 


노킹(knocking)이란 휘발유와 공기의 혼합가스는 실린더 속에서 불꽃에 의해 점화되어 미연소 혼합가스에 불꽃이 전해질 때 미연소 혼합가스의 압력과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여 자연폭발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엔진에서 노킹 현상이 일어나면 내연기관의 출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엔진기관의 가열, 배기 밸브나 피스톤의 고장, 피스톤과 실린더가 녹아 붙는 등 자동차 내부에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점은 색상입니다. 사실 기름은 무색무취로 원유에서 각각 정제된 기름은 무색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주유기 색상역시 기름 종류마다 다릅니다. 보통 일반휘발유는 노란색, 경유는 파란색(초록색), 고급 휘발유는 초록색(빨간색)이 사용됩니다.이렇게 색상을 정한 이유는 일반휘발유는 짙은 노란색을 띄고, 경유는 푸른빛이 도는 옅은 노란색을 띄며, 고급휘발유는 짙은 초록색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급 휘발유는 꼭 필요한 것인가

엔진은 압축비나 점화 시기가 최적화된 옥탄값에 맞도록 설계되고 조절되기 때문에 적정 옥탄값보다 낮은 값을 갖는 연료를 사용할 경우 엔진에 손상을 유발하게 됩니다. 반대로 높은 옥탄가 연료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차량의 성능이 향상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수입차의 경우 필수는 아니지만 옥탄가 95이상을 권장하는 유럽 자동차 메이커에서 생산된 수입차는 고급 휘발유 주유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보통 인피니티, BMW, 렉서스 경우도 옥탄가 95 정도의 휘발유를 사용해야 엔진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벤츠의 경우 8기통 이상인 S클래스 모델은 고급휘발유, 그 이하는 일반휘발유)

 

 

하지만 반대로 국산 자동차 엔진은 옥탄가가 91~92에서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신형 제네시스 쿠페를 제외한 국산 최고급 모델인 현대 자동차의 에쿠스나 기아자동차의 K9, 쌍용차 체어맨, 르노삼성 SM7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고급 휘발유는 단순히 옥탄가만 높은게 아니고 환경오염물질인 황이나 벤젠함량이 일반 휘발유에 비해 50%이상 낮기때문에 인체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였으며 엔진의 완전연소를 돕고 엔진실린더에 카본이 쌓이는걸 방지하기 위해 세정제 등의 첨가제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생각하시는 국산차 오너분들이라면 고급 휘발유를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와 군사력 증대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중국산 부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주요 선진국들의 무기 기술을 훔쳐다가 불법 복제품, 일명 짝퉁을 만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기때문에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미국 첨단 무기에 중국산 부품이 다수 사용되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최신예 전투기 F-35에 20달러 짜리 중국산 부품이 들어갔다면 어떠신가요.

 

 

지난 2014년에 미국 최신예 전투기 F-35에 중국산 부품이 사용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국방부에서 대대적인 실태 조사에 나섰는데 국방부 조사팀은 F-35 이외에도 보잉사가 생산하는 B-1B 폭격기(사진), 록히드 마틴사가 제작하는 F-16 전투기, 레이시언사가 일본과 함께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SM-3 ⅡA 미사일에 중국산 부품이 사용되고 있는 사실을 찾아내면서 미국 전체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미국은 사실 방산업체가 중국 등 다른 나라 원자재를 사용하지못하도록 법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외국산 원자재나 부품을 사용하면 향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외국의 공급자가 부품 제공을 중단하면 미군이 궁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산 부품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전투기에 들어갔을까요.

 

 

F-35 제조사인 노드롭과 하니웰은 F-35 개발 계획이 과도한 비용과 분명치 않은 개발완료 시점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자 법까지 어겨가며 F-35에 잠재적 적국인 중국의 부품을 끼워넣은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F-35를 모방한 듯한 스텔스기 젠-20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나라도 아니고 중국산 부품을 쓰는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전투기 부품 제조회사인 하니웰이 F-35에 중국산 고성능 자석을 공급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3920억달러 예산의 F-35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미 국방부에서 중국산 고성능 자석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허가의 이유가 중국산 고성능 자석을 사용하지 않고 미국 제품을 사용하면 F-35 개발 완료 시점이 계속 늦춰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면 1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 절약되며 2만5천 시간 이상의 개발 시간이 단축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첨단 무기에 사용 되는 레이더 장치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지만 여기에 들어간 중국산 고성능 자석은 불과 20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장착된 자석을 떼어내기 위해 레이더 장치를 분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 의회 회계 감사원(GAO)까지 미 국방부 조치에 대해 '미국 방산업체들이 미국의 잠재적인 적국으로부터 특수 금속을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미 국방부 결정에 대해 찬성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중국은 고열에 견디는 특수강 생산 및 공급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F-35 40대를 구매하기로 2013년 11월에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F-35가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해 평양까지 조용히 날아가 김정은의 집무실을 타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일까지 겪으며 탄생하게 된 F-35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의문입니다. 만약 F-35 전투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돈 먹고 욕만 먹는 전투기가 될수도 있습니다.

 

 

자동차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타이어는 신발이고 휠은 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휠은 타이어를 보호하는 역할은 물론 때로는 자동차의 이미지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좀 밋밋하던 자동차도 휠만 바꿔도 자동차의 외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습니다.

 

 

즉, 어떤 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스포티하게, 때로는 모던하게 자동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안전한 운행과 효율성, 성능에도 밀접한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휠 종류는 너무 많고 어떤 기준으로 휠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외관 분위기를 바꿔주는'자동차 휠'올바른 선택방법에 대해 소개 드리겠습니다. 일단 휠은 모양에 따라 스포크(Spoke), 메쉬(Mesh), 핀(Fin), 디쉬(Dish), 에어로(Aero) 타입까지 총 5개로 나누어집니다. 

 

  스포크 타입(Spoke)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자동차 타이어 휠 종류는 바로 스포크 타입입니다. 바퀴의 살 개수에 따라 6스포크, 5스포크 등으로 분류를 하게 되며, 가볍고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행 시 통풍이 잘 되어 차량의 브레이크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도 해줍니다.


  매쉬 타입(Mesh)

매쉬 타입 휠은 그물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가장 멋있는 모양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내구성 면에서 매우 띄어난 성능을 자랑합니다. 즉, 스포크 타입 에서 조금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변형된 휠로 밸런스가 좋아 대형 세단에 인기가 높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제일 비싸고, 세척 또한 불편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핀 타입(Fin)

핀 타입 휠은 스포크 타입 휠의 일종으로 13이상의 스포크를 가지면 통상적으로 핀 타입으로 분류됩니다. 스포크 타입 휠보다 비교적 얇은 스포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핀 타입 은 물고기 지느러미에서 볼 수 있는 빗살무늬 모양에서 유래되었고 강한소재와 복잡한 제작으로 내구성과 강도를 높인 만큼 가격이 비쌉니다.


 

  디쉬 타입(Dish)

디쉬 타입 휠은 이름 그대로 접시 모양의 휠인데, 평소에 찾아보기 힘든 휠 종류입니다. 공기저항을 매우 적게 받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통풍기능이 매우 약하여 브레이크의 열을 식혀주는 역할이 현저히 떨어지는 휠입니다. 그리고 무게도 무거워 경차와 트럭 외에는 거의 사용안합니다.


  에어로 타입(Aero)

에어로 타입 휠은 쉽게 바람개비를 보는 듯한 모양입니다. 단순히 멋과 자동차 전체적인 디자인을 위해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자동차 타이어 휠 종류 중 차량의 공기저항을 가장 덜 받을 수 있도록 곡면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 생산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많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스포크, 디쉬 타입을 혼합하여 에어로 스포크 (Aero-spoke), 에어로 디쉬(Aero-Dish)타입 휠 등의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휠 사이즈가 증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소형차에도 17인치 이상의 대구경 휠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적인 부분만을 중시하여 무턱대고 대구경 휠을 장착하면, 승차감이나 연비, 성능 등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차 급에 맞는 휠을 선택해야합니다.

 

 

자동차 휠 안쪽에는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휠 한 개가 감당할 수 있는 하중지수와 휠 사이즈, 림폭, 옵셋, 제조사 등이 표시돼 있습니다. 휠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의 차종에 맞는 휠인지 지름과 옵셋, 폭 등을 확인 후 선택하셔야 합니다.

 

 

예를 하나들면 중량이 무거운 SUV나 RV 차량에 승용차용 경량 휠을 선택한다면 휠 한 개당 부담해야 하는 무게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휠이 쉽게 파손되거나, 차량의 무게로 인한 휠의 지속적인 피로도가 높아져 휠에 변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차량에 맞는 올바른 휠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휠을 바꾸게 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운전자들 가운데 모양만 비슷하고 가격이 저렴한 카피 휠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카피 휠은 안정성에 문제가 있고 이는 운전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줄리 로저(Jolly Roger)는 과거 해적들이 상선을 공격할 때 해적선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통보하기 위해 사용한 깃발의 한 종류입니다. 한만디로 협박, 경고용으로 해적들이 사용한 깃발입니다. 1710년대까지 바다는 해적들의 황금 시대였지만 그 이후 해적들은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졸리 로저 깃발은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런데 그 상징성에 주목한 군대에서 이 도안을 채택하기 시작하였고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졸리 로저는 완벽하게 부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부대마크나 관련 사진을 찾다보면 이 도안을 부대마크에 도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 이런 위협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위와 같은 역사와 디자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멋 때문에 이 도안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미 해군 전투비행단 졸리 로저스(Jolly Rogers)가 대표적입니다.

 


졸리 로저스는 태평양 전쟁 중반인 1943년 1월 1일 미 해군 항공대 교관 출신인 존 토마스 블랙번이 비행단장으로 창설된 전투 비행단입니다. 당시 최신예 함재기였던 F4U 콜세어(Corsair)가 최초로 배치된 비행대였으며 F4U 콜세어를 몰고 전쟁기간 내내 일본군을 박살내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공교롭게도 졸리 로저스는 해적 깃발을 상징하는데 이 부대원들이 조종했던 전투기는 해적선을 뜻하는 콜세어(Corsair)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F4U 콜세어 초기형은 항공모함 착함 난이도가 높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콜세어를 운용하는 졸리 로저스 역시 에식스급 항공모함인 CV-17 벙커힐 호에 배치되었다가 남태평양에 위치한 솔로몬 제도의 뉴조지아 섬 비행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졸리 로저스 파일럿들은 최신예 F4U 콜세어를 지급받고 너무 신난 나머지 훈련 중 초 저고도로 날다가 지나가던 민간인 트럭을 뒤집어버리고 P-51 머스탱을 조종하는 인근의 미 공군 파일럿들과 기싸움을 하다가 도심 상공에서 즉흥적으로 모의전을 벌이는 등 온갖 사고를 치면서 부대에 큰 위기가 닥치기도 하였습니다.

 

 

파일럿들의 사고와 여러 이유로 미 해군 비행대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명성, 무엇보다도 모든 부대가 부러워할 정도로 멋졌던 해골 마크를 자랑처럼 여기던 졸리 로저스는 태평양 전쟁 후 수차례의 개편과 해체를 거치면서 졸리 로저스의 이름과 깃발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 싶었습니다.

 

▲F-4 팬덤 전투기를 운용했던 VF-84 베가본즈

하지만 다른 미 해군 전투비행대였던 VF-84 베가본즈(Vagabonds), VF-103 슬러거스(Sluggers) 등이 졸리 로저스의 이름을 계승하길 자처하였으며 2002년 5월 1일 F/A-18F 슈퍼호넷 전폭기로 기종전환된 다음부터는 VFA-103으로 변경되면서 오늘날까지 VFA-103 졸리 로저스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VFA-103 졸리 로저스의 휘장

 

▲현재 F/A-18 슈퍼호넷을 운용중인 줄리 로저스

 

현재는 니미츠급 항공모함 8번함인 CVN-75 해리 S. 트루먼을 모함으로 하고 있으며 제7항공모함비행단에 속해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1980년대 이후 미군이 적의 눈에 잘 보일만한 전투기의 화려한 하이 비지(High Visible) 도색을 금지시키면서 현재 모든 미 해군비행대 항공기들이 사용하는 저시인성의 로우 비지(Low Visible) 회색톤 도색을 하고 다닙니다. 졸리 로저스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졸리 로저스는 부대의 트레이드 마크인 해골을 보물처럼 귀중히 모시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실제 사람의 유골이며 유골의 주인공은 태평양 전쟁 당시 졸리 로저스 소속 파일럿이었던 잭 어니(Jack Ernie)입니다.

 

 

잭 어니는 태평양 전쟁중 오키나와 전투에서 격추당하면서 "Remember me, with the Jolly Rogers!"라는 마지막 교신을 남겼고, 유가족들은 고인을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졸리 로저스에 잭의 유골 중 두개골과 대퇴골을 기증하여 졸리 로저스에서 오늘날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졸리 로저스는 전사한 대선배의 진짜 유골을 보물로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 브라질 월드컵이 개막하고 세계인들은 모두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같은시각 북한군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 북한군은 '폭풍'이라는 작전명과 함께 38선을 넘으면서 남침하였습니다. 6.25전쟁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와 함께 약 4개월이 흐른 1950년 10월 25일, 운산 북쪽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치르던 국군 1사단 15연대가 상부에 적군의 전투 모습이 북한군이 아니라 중공군 같다는 보고를 하게 됩니다.

 

   중공군 1차 공세

그리고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잡히면서 중국의 참전이 확인되었습니다. 알고보니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지휘관 팽덕회는 제13병단 26만여 명의 병력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이미 북한에 넘어온 상태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6.25전쟁은 사실상 중공군 대 유엔군의 전쟁으로 바뀌었고 전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중공군은 10월 25일 UN군이 박천-운산-온정리-희천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하였을 때 1차 공세(1950.10.25 ~ 11.7)를 개시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대부대를 투입하여 UN군의 후방을 차단하기 위하여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우리 국군은 계속 진격하여 제6사단 선두부대가 압록강변 초산을 점령하였고 서부지역의 미 제24사단은 신의주 남방 정거동까지 진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대규모 공격을 통해 북쪽으로 진격하던 UN군의 작전계획을 무산시키며, 청천강선으로 밀어냈습니다. 이때 국군2군단 6개 연대 중 4개 연대가 재편성을 해야 될 정도로 타격을 받았고, 많은 지휘관들이 실종·전사했습니다. 
 

   중공군 2차 공세

11월 6일 중공군이 갑가지 사라진 이후 24일까지 18일 동안 청천강 일대의 전선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중공군이 아직 압록강 남쪽에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으나 중공군 대부대의 뚜렷한 움직임은 식별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미 사령부는 중공군이 갑자기 물러난 것은 싸울 만한 의지도 전력도 없기 때문이라고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맥아더 원수는 중공군의 조직적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공세를 계획하게됩니다. 맥아더는 “이번 작전이 전쟁의 최종공세가 될 것이며, 10일 이내에 전쟁을 끝내고 크리스마스까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그렇게 국군과 유엔군은 11월 24일‘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하게됩니다.


하지만 미군과 국군의 대공세는 첫날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곳곳에서 중공군의 움직임이 식별됐고 진격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특히 평안북도 일대의 울창한 삼림지대 속에서 작전하던 미9군단과 국군2군단은 평안북도의 높은 산 깊은 계곡 사이에 펼쳐진 끝없는 숲속으로 진격하는 것에 서서히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유엔군의 전면 공세 재개 하루 만인 11월 25일 역으로 중공군이 공세를 시작하면서 눈앞의 현실이 됐습니다. 중공군 38군은 이날 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는 국군에 비해 3~4배나 되는 병력을 투입해 국군2군단 예하의 국군7사단을 포위했습니다.

 

 

당시 바위처럼 버티며 중공군 38군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던 7사단도 병력 열세 속에 포위망에 빠지자 대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간 국군7사단 오동쪽 영원 일대에 포진하고 있던 국군2군단 예하 8사단도 역시 3배 이상의 병력을 동원한 중공군 42군의 포위망에 빠졌습니다. 미군 주력부대 역시 위기상황이었습니다.11월 24일부터 시작한 크리스마스 공세는 처음부터 중공군이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함정에 그대로 빠져든 완전히 실패한 작전이었습니다.
 

 

결국 국군과 유엔군은 마치 눈사태를 만난 것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공세를 중단하고 남쪽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중공군의 전술은 영원을 거쳐 순천 평양까지 우회하여 연합군의 퇴로를 차단 및 포위섬멸하여 전쟁을 바로 끝낼 참이었으나 이제 막 참전한 터키군이 덕천에서 중공군을 3일동안 막아냅니다.

 

 

이때가 사실 6.25 전쟁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몇 안되는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이 3일을 터키군이 못버텼으면 연합군 대부분이 전멸할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이 전투로 터키군은 참전하자마자 절반을 잃었으나 연합군이 후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중공군 3차 공세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38도선까지 후퇴한 국군과 유엔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잇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삼고, 김포반도에서 포천·김화에 이르는 지역에는 미 제1·9군단을, 중부 산악지역에는 국군 제2·3군단을, 동해안 지역에는 국군 제1군단을 배치했습니다.

 

▲팽덕회와 마오쩌둥

12월 중순,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는 극도로 지친 병력으론 미군 추격이 불가능하다며 마오쩌둥에게 전군의 휴식과 부대정비를 건의했습니다. 2~3개월간 휴식·정비를 한 뒤 이듬해 봄쯤 38도선을 돌파, 서울을 점령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즉각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마오쩌둥의 명령에 따라 팽덕회는 1950년 12월 31일 제3차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오후 5시에 시작된 이 공세는 새해 첫날을 앞두고 실시됐다고 해서 '신정공세'라고 불렸으며, 중·북연합군 9개 군단 총 30만여명이 투입됐습니다. (이때 북한군도 김일성이 지휘권을 중공군사령관에게 넘겨줬기 때문에 중공군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서부전선의 5개 군단과 중부전선의 4개 군단이 문산 우측의 국군 제1사단과 동두천의 국군 제6사단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1951년 1월 2일, 국군 1사단과 6사단 주력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중부전선의 국군 3사단도 집중공격을 받았습니다. 서울 동측방이 무너지자 서울지역 아군 10여만명의 퇴로가 차단될 위험에 처했고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즉각 서울을 포기했습니다.

 

 

1월 4일 밤, 서울은 중공군 제39군단 예하 1개 사단, 제50군단과 북한군 제1군단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렇게 또 다시 수십만명의 피란민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중공군과 북한군은 1월 7~8일 수원과 인천까지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중공군은 기동력이 뛰어난 미군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1월 8일을 기해 대략 37도선에서 추격을 멈췄습니다.

 

   중공군 4차 공세

중공군 4차공세는 1951년 2월 11일부터 일주일 간의 벌어졌습니다. 중서부 전선의 연합군을 섬멸할 목적으로 수십만 중공군 대군이 또 다시 남하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 중공군의 남하 돌파구는 양평의 "지평리"였습니다. 여기서 지평리 전투가 벌어지게됩니다. 이 지평리만 접수하면 중공군으로써는 4차공세도 성공시키게 되는거였습니다.

 


그리하여 중공군은 지평리의 후방인 수리까지 차단하여 후방지원을 막은 후 약 4개 사단으로 포위한 다음 야간에 공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2 보병사단 23연와 프랑스 대대는 1개 연대와 1개 대대의 병력으로 중국 인민해방군 39군(4개 사단)의 공격을 무려 3일 밤낮동안 전부 막아내게 됩니다.

 


급기야 미군 특공대가 후방의 곡수리를 돌파하여 연합군과 지평리가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이 때 참여한 중공군은 그 피해가 너무도 막대하여 이후 전투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할 정도 였으며 지금까지 1~4차 공세 중 유일하게 연합군이 승리한 전투로 기억되었습니다. 이후 서울까지 탈환하였습니다.

 

   중공군 5차 공세

중공군은 4차 공세가 실패하고 오히려 유엔군의 반격에 북으로 밀려났지만 중공군은 새로운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회는 5차 공세에 약 27만명과 북한군 약 3만5천명으로 한강 북쪽에 배치된 유엔군 주력부대를 격멸시켜 노동절에 맞추어 서울에 재입성하겠다는 목표로 세웠습니다.

 


5차공세는 4월 21일 밤에 시작되었습니다. 중공군의 19병단은 임진강 부근에 위치한 미 1군단을 목표로 했고 9병단은 중부전선의 춘천 사창리를 공격하기로 하였는데 이 지역을 방어하던 국군 6사단이 중공군에 의해 돌파를 당하면서 중부전선에 큰 구멍(16km의 공간)이 뚫리게 되었습니다.

 


이 지점을 방어하기 위해서 영연방 27독립여단이 급파되었습니다. 이 부대는 영국군을 주축으로 하여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군이 편제되어 있었습니다. 27독립여단은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이 전투를 가평 전투라 부릅니다. 가평 전투에서 영연방 27독립여단은 3개 대대 병력으로 3일 동안의 방어전을 전개하여 자신들보다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냈습니다.

 

 

영국군과 호주군은 가평의 죽둔리에서 부대원의 40퍼센트 이상이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경춘가도를 지켜냈습니다. 캐나다군은 가평 남단 667고지를 사수하여 후퇴하는 국군 6사단을 엄호하고 경춘간의 주보급로를 확보하였으며 뉴질랜드군은 막강한 포병화력 지원으로 중공군을 완전히 차단, 격멸시켰습니다.

 

 

이 전투로 중공군 제20군은 5차 공세에서 북한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되었습니다.

 

 

   중공군 6차 공세

5차 공세가 좌절되었음에도 마오쩌둥은 6차 공세를 이미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5월 12일, 중공군 사단들이 공격을 위해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5월 16일, 9개 중공군 사단과 4개 포병 연대는 미군 정찰기에 탐지되지 않고 화천 저수지 동쪽 인제 가까이에서 우리 국군 5, 7, 9사단에 대한 공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중공군은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6차 공세 하루 만인 5월 17일 밤 강원도 인제군 현리 일대의 3군단(5, 7, 9사단)이 중공군의 공세에 패배하고 퇴각하였습니다. 현리전투라고 칭해지는 약 9일간의 전투는 사실상 일방적 패배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3군단 지휘부와 사단 지휘부가 먼저 도주를 시작하면서 전 군단이 패닉에 빠져 일시에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9사단장 최석 등 일부 고위 장교들은 수치스럽게도 계급장을 떼고 도주했습니다. 그렇게 3군단은 3일 동안 무려 70km를 도망쳐 '하진부'에서 겨우 수습됐지만 살아남은 병력은 4만명 중 절반인 2만명 뿐이었습니다.

 

 

 

5월 20일 미 9군단이 반격을 시작하였고 23일에는 미 10군단도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지친 상황이었고 탄약과 식량은 거의 바닥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5월 말 유엔은 공산군이 5차, 6차 공세를 시작하기 전의 전선 대부분을 회복하였습니다.

 

 

6차에 걸친 공세를 통해서 중공군은 더 이상 대규모 공세를 치를 능력이 없었고 38선 부근의 대규모의 지하 방어 시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양측의 피해가 막심한 상태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은 내심 휴전을 원하였고 결국 휴전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은 더욱 더 처참한 전쟁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협상은 2년을 넘게 질질 끌었고 그 사이 양측은 서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 1년 간보다 더 참혹하고 무의미한 전투에 매달렸습니다.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진 것입니다.

 

   중공군 7차 공세

그리고 6차 공세에서 무려 2년이 지난 1953년 7월에 7차 공세가 펼쳐집니다. 휴전협상을 하는 2년동안은 고지전이 주류였고 전면 영토변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7차공세는 사실 휴전협정이 이미 거의 완료된 상태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위 지도를 보시면 지금의 휴전선과 비슷하긴 하지만 중부전선에 북쪽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북한의 금성지역인데 사실 6차공세가 끝났을 당시만 해도 금성지역은 우리나라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7차공세에서 무려 5개 군단급의 수십만 대군이 금성지역을 포위하여 압박하는 바람에 결국 금성천 북방 지역의 땅을 북한군에 내주고 말았습니다.

 


만약 끝까지 버텼으면 국군 6사단과 8사단은 후방 차단되어 전멸했습니다. 당시 이 7차공세에서 중공군은 금성돌출부를 공격하여 자기네들 땅으로 만들고 금성천까지 건너 내려와 백석산 적성산 초입까지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국군이 백석산 적성산에 방어선을 구축해 겨우 막아냈고 다시 금성천 남단까지 공격하여 중공군을 쫓아냈습니다.

 


연합군은 금성천을 건너 다시 돌출부를 장악하려 했지만 휴전협정 파기를 우려한 연합군 지휘부의 명령으로 거기서 반격을 멈추게 되었고 결국 그대로 휴전선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중국의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참전 결정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3년 이상 장기화되면서 중국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왔다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당시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으면 후회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 한반도에 미래는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입니다.

  데니스 시플렌코프

키 190cm 몸무게 190kg를 자랑하는 우크라이나의 팔씨름 선수입니다. 그리고 현재 왼손,오른손 모두 세계랭킹 1위입니다. 데니스 시플렌코프(Denis Cyplenkov)의 손은 팔씨름 세계에서도 유명합니다. 일반적인 남성과 비교하면 3배, 다른 팔씨름 선수와 비교했을 때 2배 정도 두껍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악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취미는 엄지와 검지 만으로 호두까기이며 한 손에 60kg 씩 120kg그램 정도는 가뿐하게 드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데니스는 사실 자신의 특별난 힘을 모르다가 막노동을 하면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1년 세계 팔씨름 대회에 참가하였는데 거의 모든 상대를 무표정으로 박살냈습니다.

 

 

지금 현재 데니스는 넘치는 힘과 잘생긴 외모덕에 주변에는 그와 팔씨름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아프토르 율리어스 비요른손

아이슬란드 출신의 천하장사인 하프토르 율리어스 비요른손(Hafþor Julius Bjornsson)은 유명한 미드 왕좌의 게임 시즌4에서 마운틴을 연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1988년 11월 26일생이며 사실 미래가 유망한 농구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농구경력이 최고에 다른20세에 치명적인 무릎부상을 입고 농구계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요른손은 2008년 자신이 운동하던 체육관에서​ 아이슬란드의 국민적인 영웅 스트롱맨 매그너스베르마그누손을 만나면서 스트롱맨 세계에 입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월드클래스 스트롱맨 대회 6위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하였으며 그 이후 각종 세계 대회를 휩쓸면서 현재까지 세셰에서 가장 힘쎈사람중 하나로 인정 받고있습니다.

 

 

현재의 비요른손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토르'라고 불리우며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있습니다.

 

  안드레 더 자이언트

세계 제 8대 불가사의로 불렸던 남자가 있습니다. 키 224cm, 몸무게 236kg를 자랑했던 안드레 더 자이언트(André the Giant)입니다. 안드레는 헐크 호건과 함께 WWF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순수이자 프로레슬링 사상 최고의 거인 레슬러입니다.

 

 

워낙 거대했던 체구였기 때문에 어딜 가든지 안드레가 경기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고 당대 프로레슬러 중에서 최고 액수의 몸값을 받던 대 스타였습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십 년이 넘도록 제대로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최종보스급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안드레는 사실 거인병을 앓고 있었는데 12살 때 키가 191cm, 몸무게가 90kg였습니다. 하지만 거인병으로 수명에 제한이 많았으며 의사로부터 20세 이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쾌락주의적인 삶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식사량이 그야말로 엄청났는데 평소 식사시간이 기본 8~9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술을 엄청 좋아해서 경기 전날에도 와인을 단숨에 14병이나 해치웠으며 맥주 118잔을 마시고도 멀쩡했다고 합니다.

 

  사자르 가리비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헐크의 괴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헐크와 비슷한 남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종격투기 선수 트레이너를 했었던 배우 마동석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동석씨보다 더 헐크같은 남자가 이란의 존재하고 있습니다. 25살, 키 188cm, 몸무게 155kg를 자랑하는 사자르 가리비(Sajad Gharibi)입니다.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27만 명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페르시안 헐크'로 불립니다. 사자르는 원래 역도선수 출신으로 지금 현재는 175kg까지 들어올릴 수 있으며 이란 국가대표로 보디빌딩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몸이 너무 커서 대중교통이나 일상생활을 하는데 너무 불편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두박근 둘레가 무려 64cm입니다. IS에 맞서 싸우기 위해 특수 부대에 지원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미국에 프로 레슬링에 진출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호마리우 도스 산토스 알베스

호마리우 도스 산토스 알베스(Romario Dos Santos Alves)의 직업은 원래 보디가드였습니다. 그런데 2012년 체육관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처음 불법 약물에 손을 댔습니다. 문제는 그 약물을 몸 속에 주사하면 근육처럼 보이는데 부작용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호마리우는 운동 없이 손쉽게 근육이 부풀어오르는 효과에 만족하였고 점점 약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약 1년간 불법 약물을 근육에 주입했고, 그의 몸은 차츰 망가져갔습니다. 어느 순간 근육이 단단히 굳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팔에 주사기를 꽂을 수도 없을 만큼 딱딱해졌습니다. 그래서 양 팔을 절단할 위기까지 갔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수술 당일 정밀검사에서 절제까지는 필요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약물의 위험성을 깨달은 호마리우는 자신의 지난 행동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호마리우는 약물을 멀리한 채 운동 등 정상적인 방법으로 근육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완벽한 보디빌더가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다시 약물에 손대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항공기 개조는 완성기 자체 생산에 버금가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내부 공간 변형에 따른 무게 중심 유지, 중요 교체 부위 제작 등의 고난도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기 때문입니다. 군용기는 개조를 통해 수명을 연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대한항공이 이런 개조 기술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KAI에서 2010년에 진행한 우리 해군의 해상초계기 P-3B 개조 작업은 대표적인 수명 연장, 성능 개량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해군은 미 해군이 25년간 사용한 뒤 14년간 애리조나 사막에 위치한 비행기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미 공군 309 항공유지 및 재생비행단에 방치시켰던 P-3B 중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녀석들만 골라 대당 100억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사들였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P-3C를 원했지만 우리나라가 주문한 마지막 P-3C 생산 이후 라인이 패쇄되는 바람에 P-3C 계열의 초계기 획득을 위해서는 P-3B를 P-3C 사양으로 개조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막에서 P-3B 중 아무리 상태가 괜찮은 녀석으로 골랐다고는 하지만 25년이라는 긴 운용기간 동안 한계수명 15,000 시간을 거의 달상하였던 기체이고

 

 

퇴역 이후 14년간 사막에서 방치된 탓에 상태는 대부분 최악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기체를 들여와 향후 20년간 15,000시간의 비행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어쩌면 새기체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총 9기를 도입하였고 그 중 1기는 부품조달, 동류전환 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8기를 P-3CK로 개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체를 대부분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수준의 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KAI에서는 P-3C의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는 개조 작업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P-3CK는 이전에 P-3B와 겉으로 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정말 전혀 다른 기체라고 할만큼 놀라운 개조가 이루어졌습니다.

 

 

P-3CK는 기존 적외선 카메라 외에 전자광학 카메라를 추가해 간단한 조작으로 20km 떨어져 있는 물체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존에 비해 성능이 약5배 이상 향상되었으며 레이저를 이용해 미약한 빛도 감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향장비의 수신기 능력은 P-3C의 16채널 대비 2배인 32채널로 확대됐고, 음향기록 또한 P-3C의 2시간에서 4배가 확대된 8시간까지 기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P-3CK는 보다 많은 데이터를 수용하고 처리하기 위해 임무컴퓨터의 CPU가 P-3B의 3개에서 8개로 확대됐으며 처리속도도 무려 10배가량 빨라졌습니다.     

 

 

또한 Harpoon Block2 미사일 무장이 가능해지면서 우리나라 함정에 큰 위협이 되는 북한군의 해안포와 이동 미사일 발사대 등에 대해 사정권 밖 타격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를 확인한 미국은 P-3 전력 노출을 우려하면서도 우리나라 항공 기술력에 놀랐다고 합니다.

 

 

P-3CK는 현재 독도 및 이어도까지 동·서·남해 대한민국 영해 어느 곳이든 가장 신속하게 이동해 부여된 임무를 장시간 체공하며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북한 상선의 대한민국 작전해역 침범 대처, 일본 순시선의 독도 침범 대응, 우리 어선의 해상사고 시 탐색·구조작전 지원, 대잠수함작전 등 전천후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P-3C와 P-3CK만으로 한반도 영해를 지키기엔 버겁습니다. 우리나라 해상초계기의 숫자는 일본의 겨우 1/5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로 일본 해상자위대는 P-3 해상 초계기를 1977년 도입한 이래 100대 이상 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효율적인 작전과 우리나라 영해를 방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력포함 최소한 24대 이상의 해상초계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보잉이 제작한 P-8A 포세이돈이 도입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차기 해상초계기 도입 기종은 2018년에 결정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