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네 실시간 이슈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 공군은 약 500여 기종의 전투용 항공기중 상당수가 노후화 되어 전투기및 공격기가 2009년부터 10년간 약 150기가량씩 부족해지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1993년 국방부에서는 중기 사업으로 120대의 중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당시 냉전이 끝나고 국방예산 감축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많은 군수업체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맥도넬 더글라스는 F-15E, 러시아의 수호이는 Su-30과 개발중인 Su-35, 유럽의 EADS는 당시 개발중인 유로파이터 타이푼, 프랑스의 다소 역시 개발중인 라팔을 제안하려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최초로 개최한 1996년 국제 서울 에어쇼에 개발이 늦어진 유로파이터를 제외하고 위에 소개한 전투기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투기 도입 사업을 진행하여 2002년 도입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120대 도입을 마칠 것이라는 계획까지 세워 두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우리나라 공군은 도입 수량을 40대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 공식적으로 전투기 도입 사업(1차 FX)을 공표하였습니다.

 

 

당시 참여의사를 밝힌 기업은 보잉사의 F-15K 그리고 다소사의 라팔 Mk.2, EADS사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수호이의 Su-35 슈퍼플랭커였습니다. 당시 록히드 마틴의 F-22 랩터는 예비 제안서를 제출한지 얼마 안가서 스스로 포기해버렸습니다. 당시 F-22는 개발중이었던데다 미국 정부가 수출허가를 내지 않았으며 기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정식 후보로 F-15K, 라팔, 유로파이터, Su-35UB로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정식 후보로 정해진 전투기의 장단점을 살펴보면

 

  Su-35UB
Su-35UB는 후보 전투기 중 가장 큰 기체크기 덕분에 넓은 작전반경과 뛰어난 기동성, 강력한 폭장능력이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군은 미국의 무기체계를 사용했기에 부대시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유로파이터는뛰어난 폭장량과 강력한 공대공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후보 전투기 중 가장 비싸고 2008년에야 도입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F-15K
F-15K는 가장 많은 폭장량과 가장 빠른 속력과 가속력, 그리고 무엇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실전배치되었고 전쟁에도 수없이 참여, 뛰어난 성능을 입증하였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전투기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라팔
라팔은 최신 전자장비를 이용하여 뛰어난 공대공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스텔스기까진 아니지만 낮은 RCS값도 나름대로의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라팔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엔진과 공대지 무장 소프트웨어 자체도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이후 많은 논쟁을 거쳤는데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값비싼 가격과 인도 일정의 차질 때문에 유로파이터 타이푼이 가장 먼저 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높은 점수를 받았던 수호이의 Su-35UB는 당시 냉전이 끝난 후 설계국에서 독립한지 얼마되지 않아 많은 부분이 미흡하여 탈락하였습니다. 그렇게 결국 라팔과 F-15K가 남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라팔의 다쏘와 F-15K의 보잉은 다른 두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무리수를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다쏘가 스칼프 순항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자 보잉도 이에 질세라 SLAM-ER 순항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F-15K의 레이더를 AN/APG-70이 아닌 AN/APG-63(v)1 레이더로 교체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다소사는 가장 최약체로 꼽히던 엔진 문제에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바로 M-88-3 엔진을 자사가 돈들여서 개발한 다음 장착해 주겠다며 그 기간전에 인도되는 기체는 M-88-2를 장착해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3월 말에 1단계 평가를 발표하였는데 결과는 라팔과 F-15의 공동 승리였습니다. 라팔과 F-15K의 평가점수가 오차범위인 3%이내였기 때문에 2단계 평가 사업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기종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공군 내에서도 많은 찬반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단계 평가에서 결국 F-15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2단계 평가 사업은 한미관계나 기존 한국군 무기와의 호환성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F-15K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분야였기 때문에 사실상 F-15K가 선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4월 중순 우리나라 국방부는 최종으로 F-15K 40대 도입을 확정지었습니다.

 

 

당시 F-15K 기체가격만 1대당 1억 500만불로 도입하였는데 당시 미 공군조차 운용하지 않던 최신 장비랜턴-2000(타이거 아이) 포드나 SLAM-ER, 하푼 블록2 미사일까지 포함된 완전 패키지로 샀으니 엄청 싸게 도입한 것이 맞습니다. 지금 현재도 라팔과 유로 파이터 타이푼, SU-35와 경합을 내세운 경쟁입찰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방부는 예전부터 무기 도입 사업을 할 때 경쟁상대 양쪽이 애가 타들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최초의 업그레이드형 F-15K를 저렴한 가격에 도입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이후 2008년 8월 2차 FX 사업으로 21대의 F-15K를 추가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F-15K에 탑재된 F110 엔진의 고압 터빈 덮개가 우리나라에 한 해 평균 열 개 정도가 필요하며 구매할 경우 하나에 4천만 원이 들지만 최근 3D 프린터로 찍어내면서 가격이 3백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조달기간도 20일, 3분의 1 수준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군은 F-15K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F-35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공군에 15K만한 체급의 전폭기가 없으며, 미 공군 역시 15E를 계속해서 개량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15K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나치 독일의 엘리트 수호부대인 친위대(SS)는 SS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를 필두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쿠르트 달루게 등과 함께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말살하는 계획인 '최종 해결'의 실행과정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대전 말까지 SS는 엄청난 대량학살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골수 나치분자로 1931년 친위대(SS) 정보부대인 보안방첩대(Sicherheitsdienst; SD)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이드리히는 SS의 정보업무를 군 정보기관 수준으로 끌어올려 조직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런 하이드리히의 능력에 만족한 히믈러는 하이드리히를 1933년 바이에른(Bayern) 주 부경찰청장으로 임명하였으며 1934년에 헤르만 괴링(Hermann Göing)으로부터 게슈타포(Gestapo) 지휘권까지 넘겨 받으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1941년 6월에는 독소전쟁에 앞서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의 토벌을 위해서 살인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을 조직해서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했으며, 1941년 7월에는 헤르만 괴링으로부터 유럽전역에 걸친 "유대인 문제 최종해결책"을 건의받았고 이를 근거로 해서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 학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유대인 학살계획은 하이드리히의 이름을 따서 "라인하르트 작전"이라고 불렸습니다.

 

 

하이드리히 진급 내역

1922. 4. 1: 해군 사관 후보생(Fähnrich Zur See)
1924. 4. 1: 준위(Oberfähnrich Zur See)
1926. 7. 1: 소위(Leutnant Zur See)
1928. 7. 1: 중위(Oberleutnant zur See)
1931. 7.14: SS 이병(Mann)
1931. 8.10: SS 소위(Sturmführer)
1931.12. 1: SS 대위(Sturmhauptführer)
1931.12.25: SS 소령(Sturmbannführer)
1932. 7.29: SS 대령(Standartenführer)
1933.11. 9: SS 준장(Brigadeführer)
1934. 6.30: SS 소장(Gruppenführer)
1941. 9.27: SS 중장(Obergruppenführer)

 

 

그렇게 언제나 히틀러의 적을 제거하는 선봉에는 언제나 하이드리히가 서 있었습니다. 특히 하이드리히는 인종학살을 고안한 주요인물 중 하나였으며 승승장구 하던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 말에 이르자 히틀러는 유럽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고, 독일군은 모스크바(Moskva)까지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연합국은 나치 정권의 핵심인물이자 제2의 히틀러가 될 수도 있는 하이드리히를 제1사살목표로 지정하고 표적 사살(Targeted Killing)작전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전은 유인원 작전(Operation Anthropoid)으로 불렸습니다. 영국군 특수작전국(SOE)은 1941년 10월 20일부터 유인원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SOE 2인조 작전팀은 제138비행대대의 핼리팩스 수송기 편으로 1941년 12월 28일 체코로 이동하였고 기차에서 하이드리히를 사살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차에서 암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포기하고 하이드리히의 저택에서 프라하로 향하는 도중에 숲속에서 매복공격을 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하지만 하이드리히 차량에 무장병력이 있는걸 확인하고 프라하에서 암살하기로 다시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1942년 5월 27일 10시 30분 하이드리히는 파넨스케 브르제자니(Panenské Břežany)의 자택에서 프라하 성의 사무실로 출발했습니다. 영국의 특수부대 SOE 2명은 프라하 8번 국도상에 있는 불로브카(Bulovka) 병원 골목의 전차 정거장에서 잠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을 연 하이드리히의 메르세데스 벤츠 320C 컨버터블 차량이 속도를 줄이면서 코너를 돌자 SOE 요원 한 명이 하이드리히의 차량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품속에서 스텐 기관단총을 꺼내서 발사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기관단총이 기능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하이드리히는 운전사에게 차량을 멈출 것을 명령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을 꺼내들었습니다. 좌석에서 일어난 하이드리히가 권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또 다른 SOE요원 한 명이 개조한 영국제 73식 대전차용 수류탄을 오픈카 안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수류탄은 완전히 차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차량의 오른쪽 뒤편에 부딪히면서 폭파했습니다. 폭발과 함께 수류탄과 차량 부속의 파편이 하이드리히의 몸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한편 자신이 파편으로 부상당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하이드리히는 차 밖으로 뛰어 나와서 권총을 쏘면서 SOE요원을 쫓아갔지만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곧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겨우 현장을 빠져나온 SOE 요원 2명은 자신들의 암살 시도가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이드리히는 곧바로 250미터 앞에 있는 불로브카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으고 회복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으로부터 1주일이 지나자 하이드리히는 완치된 듯이 보였지만 다음 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이 아끼던 하이드리히가 죽자 하이드리히가 죽은 체코의 리디체(Lidice)라는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16세 이상 남자 196명을 모두 처형한 뒤에,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수용소로 끌려간 105명의 아이 중 88명이 죽고 17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학살 사실을 전세계에 공표했습니다.

 

 

암살에 성공한 SOE 2명은 교회에 은신하고 있었는데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6월 18일 03시 45분, SS 병력 700여 명이 SOE 요원이 은신한 교회로 신속히 출동하여 04시 15분 교회 인근에 차단선을 구축하고 공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곳에는 하이드리히 암살에 성공한 SOE 2명 외에 암살에 관여한 5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관단총, 수류탄으로 무장하여 기관총의 지원을 받는 SS 병력을 상대로 2시간 동안 치열한 혈투를 벌이다가 모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SS 병력도 14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 작전은 2차대전을 통틀어 독일 정부 고위인사에 대한 유일한 암살작전으로 기록되었으며 지금 현재까지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교회 벽에는 총탄 흔적이 남아있으며 초모비가 건립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일화는 새벽의 7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제작되어 2016년 8월 12일에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이드리히 역을 맡은 배우 데틀레프 보테라는 독일인 배우가 하이드리히와 너무 닮아 한번 더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자동차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연비, 안전, 디자인 그리고 승차감입니다. 승차감은 넓은 의미로 종합적인 쾌적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주로 차량의 진동에 대한 느낌을 말합니다. 아무리 자동차 스펙이 좋다고해도 승차감이 나쁘면 좋은 자동차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근 출시되는 SUV들도 승차감에 신경을 쓰면서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동차 승차감을 결정짓는 요소 5 가지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서스펜션

서스펜션은 차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스프링 등 차량의 충격흡수시스템을 통칭합니다. 서스펜션의 주된 역할은 노면의 진동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서스펜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승차감의 차이가 크게 달라집니다. 서스펜션을 단단하게 설정하면 코너링이나 노면 접지력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노면의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운전할 경우 허리가 아프고 멀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세스펜션을 무르게 설정하면 저속 주행 시 노면의 충격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지만 고속 주행에서는 차체를 지지하는 것이 불안정하여 차가 출렁거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만약 노면의 요철을 밟고 지나갔을 때 전달되는 충격량은 적을 수 있지만 진동이 오랫동안 차체에 남아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운전 성향에 맞게 설정되어있는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타이어

편한 신발을 신어야 걷기 편한 것처럼 자동차도 꼭 맞는 타이어를 장착해야 승차감이 좋아집니다.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1차적으로 걸러주는 장치가 타이어입니다. 타이어는 고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고 내부는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우리가 느끼는 승차감은 타이어의 사이드월이나 타이어 공기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흔히 타이어 측면 부분을 사이드월이라고 부르는데 사이드월의 높이가 승차감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만약 휠 인치업을 할 경우 사이드월은 얇아지고 두꺼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노면의 충격이 차량으로 전달되기가 쉬워 승차감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타이어의 공기압이 높을수록 승차감은 나빠집니다. 차량 제조사에서는 이러한 승차감을 고려하기 때문에 적정 공기압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합니다. 하지만 공기압이 낮으면 타이어의 마모 속도도 빠르고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속 주행을 많이 하는 차는 높은 공기압을 유지하는 것이 좋고 시내 주행을 주로 하거나 승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공기압이 조금 낮은 것이 좋습니다.


  시트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 시트는 그저 단순한 의자의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가지 인체공학적 자동차 시트가 개발되어 장거리 주행 시에도 피로를 적게 받고, 고속주행이나 급격한 코너링을 할 때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탑승자의 편의를 고려한 특수 목적의 자동차 시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최근 단점이 많은 직물 시트는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고 급하게 회전을 할 때 운전자의 몸을 안정감 있게 고정해주는 버킷 시트나 가장 편안한 자세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저중력 시트 등이 인기라고 합니다.


 

  엔진과 변속기

자동차 시동만 건 상태에서도 차량의 진동과 소음이 발생하는데 이는 엔진 때문입니다. 엔진의  진동과 소음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진의 컨디션 유지인데 올바른 교체시기에 엔진오일을 교체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디젤 차량의 진동과 소음이 심한편이기 때문에 디젤 차량의 경우는 연료 첨가제를 이용한다면 더 좋습니다.

 

 

또한 외부 주차시엔 차량의 냉간샅애가 길어져서 자동차의 진동과 소음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차는 가급적 지하주차를 이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변속기도 마찬가지인데 울컥거리는 등 변속충격이 발생하거나 동력을 매끄럽게 전달하지 못하면 승차감을 해치게 됩니다. 기술적으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앞선 것으로 평가 받고 있음에도 아직 부드러움 측면에서는 자동변속기를 앞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체 강성

뛰어난 승차감을 위해서는 차체 강성도 중요합니다. 차체가 튼튼하지 못하면 진동이나 소음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운전자와 탑승자에게 전달됩니다. 차체 강성은 충돌 안정성과 주행성능, 승차감까지 결정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차체 강성을 무조건 단단하게 높여도 외부의 충격을 차체가 흡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동차 회사들은 차체 강성과 다양한 조건을 분석하여 차체 강성의 황금비율을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만든 도로를 고속도로라고 부릅니다. 고속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며 우리나라에서는 제한속도 100km/h 이상의 도로를 고속도로로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일본은 126cc이상, 이탈리아는 150cc이상, 필리핀은 400cc이상 오토바이가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각 나라마다 고속도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속도로를 갖춘 나라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미국의 고속도로는 일부 대도시들을 제외하고 요금이 무료입니다. 미국은 영토가 넓고 산이 거의 없는 곳도 많아 끝없이 뻗은 도로에서 거의 핸들도 틀 필요가 없이 직진만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 포장이 매우 나쁘고 야생동물이 많이 나타나 로드킬이 자주 일어납니다. 

 

 

또한 넓은 대륙에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황야도 가로질러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보니, 80-90마일로 한시간 가까이 달려도 사람 사는 곳이 안 나오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같은 체계화된 휴게소들은 드물고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주유소나 햄버거 가게, 그리고 작은 마을들이 휴게소의 역할을 합니다.


  캐나다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

미국보다는 고속도로 관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특히 주요 도시를 지나는 구간은 도로 포장은 우리나라 수준으로 잘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외곽 고속도로 경우 곰같은 맹수도 주변에 많이 서식하고 있기때문에 야생동물 출몰 표지판을 보면 감속해서 운전하는게 좋습니다.

 

 

속도는 일반적으로 100km/h이며 도심지는 80km/h까지 내려갑니다. 과속 카메라는 따라 없고 경찰들이 매복해서 단속을 합니다. 하지만 과속해서 잡히면 벌점 3점에 $300 캐나다 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독일 아우토반

아우토반은 전 구간이 왕복 4차로~왕복 6차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왕복 8차로 이상인 구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전 구간의 50%가 제한속도가 없습니다. 철저한 지정차로제 준수를 통해 평균 200 km/h 이상, 순간 300 km/h 이상의 안전한 초고속 주행이 가능합니다.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통행료가 없습니다. 그리고 휴게소는 단순히 주차장만 있는 경우부터 식당이나 바베큐 시설, 호텔까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휴게소을 한번 출입하는데 70센트(유로화)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아우토스트라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아우토반이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라고 알고 있지만 아우토스트라다가 세계 최초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나들목을 살펴보면 나팔관 형태의 입체 교차로로 설계되었는데 바로 아우토스트라다를 모델로 삼아 설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90%이상이 유료도로입니다.


  일본 고속도로

일본의 고속도로 중에서는 최고제한속도 110km/h인 곳이 없습니다. 또 어떤 왕복 4차선 고속도로는 도로선형이나 도심지를 통과하느냐에 따라서 최고제한속도가 80km/h인 경우 외에도 최고제한속도가 70km/h이거나 60km/h인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이 물가가 높고 교통비는 특히 비싸기 때문에 고속도로 통행료도 매우 비싸서 1~2인의 경우 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고속도로 1km 당 평균 요금은 30엔(290원) 정도입니다.


  중국 국가고속공로망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시스템을 가진 나라입니다. 중국 고속도로를 처음보는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잘 되어있어 놀란다고 합니다.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 구간에는 많은 휴게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작년에는 베이징과 우루무치를 잇는 총길이 2천582㎞의 고속도로가 개통하였습니다.(그 중 930㎞구간은 사막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대만 중화민국국도

대만의 고속도로도 대부분 구간이 유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통행료 지불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도로마다 중간 중간에 요금소가 설치되어 있어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종이로 된 통행권을 내거나 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요금소 하나를 지날때마다 40원이며 선불로 통행권을 구입할 경우 장당 38원에 이용이 가능합니다. 단점은 휴게소 간 거리가 우리나라의 2~3배 정도 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뒤 격분한 팔레스타인의 정당이자 무장 테러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이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내로 뚫어놓은 수백 미터의 지하 터널을 발견해 파괴하면서 하마스는 터널 파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한 뒤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였고 이에 이스라엘 군은 보복으로 공중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계속해서 이스라엘 군은 전차를 이용해 하마스 군기지를 향해 포격하는 등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면서 양측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을 두고 싸우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대표 무기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마스 대표무기

□ 불새-2

하마스 대전차 무기중 하나인 불새-2는 이스라엘 군에게 위협적인 무기입니다. 거치대와 조준장치가 무겁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옛 동유럽 국가들과 북한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정교한 밀수 로드를 통해서 하마스에 대량 밀수출된것이 확인되었고 이란에서도 하마스에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알카삼 여단과 알나세르 여단에서 불새-2 미사일을 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 까삼

하마스가 애용하는 로켓무기 까삼(Qassam)입니다.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가격이 저렴합니다.(까삼 1개 제작비용은 80만원 정도) 뉴스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또는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나오면 90%이상 이 까삼을 사용한 것입니다. 까삼로켓의 추진체는 주로 설탕, 질산칼륨 등을 섞어서 만들며 위력도 나름 준수한 편이라 사거리는 5km(까삼3은 10km) 정도이며 30cm 콘크리트 정도는 간단히 파괴합니다.


□ 파즈르-5

현재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 중 사정거리가 가장 긴 로켓 파즈르-5입니다. 이란에서 들여온 이란제 파지르-5는 사거리는 75km에 로켓 발사중량 1.5톤, 탄두 무게는 175kg에 이르는, 사실상 정규군 수준의 무기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감시를 피해 이 로켓을 이란에서 수단으로 운송하고 거기서 분해한 뒤 시나이의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로 옮겨 조립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테크니컬 차량

민수용 차량에 중화기를 설치한 트럭으로 AK-47, 알라의 요술봉과 함께 테러리스트 3종 세트 중 하나로 불립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트럭을 다연장로켓 발사기로 개조하였습니다. 하마스는 이 차량을 평범한 트럭으로 가장해 사격위치까지 기동한 후 로켓을 발사합니다. 로켓은 99% 까삼 로켓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대표무기

□ 메르카바

메르카바는 이스라엘군이 운용하는 주력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RPG나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갖고 싸우는 하마스를 상대로 승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력을 극도로 높이면서 기형적으로 진화하다 보니 정규전에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무겁기로 유명한 M1A2 에이브람스 전차보다 2톤이 더 무겁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개량되면서 꽤 강력한 전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나메르

나메르는 메르카바 Mk4 전차의 차체를 개조해서 만든 중장갑차로 M2 중기관총이나 Mk.19 고속유탄기관총, FN MAG 7.62mm 기관총, 60mm 박격포를 원격조종해서 공격할 수 있으며 12명까지 탑승이 가능합니다.

 

 

이스라엘 군이 시가전에서 마주치는 하마스는 대전차 로켓, 대전차미사일, 박격포, 다연장로켓, 급조폭발물 등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메르는 다른 국가의 3세대 전차보다도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한마디로 나메르는 시가전에서 게릴라 상대로 싸우는 데 최적화된 중장갑차입니다.


 

□ F-16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공군력을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히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F-16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개량하여 아직까지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에 공중 폭격했다고 하면 대부분 F-16D/I이나 F-15I입니다.


□ 아이언돔

아이언돔은 이스라엘 군이 개발한 대공 미사일로 전투기나 미사일을 요격하기보다는 주로 하마스가 사용하는 까삼 로켓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장에 따르면 14년 7월 벌어진 이스라엘 하마스 전투 중 아이언 돔이 보인 명중률은 90%에 달합니다. 문제는 80만원짜리 하마스의 까삼 로켓을 막기위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아이언 돔을 사용하는게 큰 부담이기 때문에 미국이 예산지원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JRF-2(Joint Task Force-2)는 1993년 100여 명의 지원자로 창설된 캐나다군의 특수부대로 이들의 활동은 캐나다 정부에 의해 매우 비밀스럽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처음에 JTF-2의 존재조차 부정했었습니다. JTF-2라는 부대가 있다는게 알려진게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었습니다.

 

 

40여명의 JTF-2 대원이 아프간 남부에 전개되어 탈레반 요인을 체포한 후에 미군에게 인도하는 사진이 찍혀 파병 한참 뒤인 몇 달 후에 알려졌습니다. 재밌는 건 캐나다 총리조차 JTF-2부대가 아프간에 파병 간 사실을 사진을 통해 알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JTF-2가 다국적 특수전 Task Force에 소속되어 항구적 자유작전중 탈레반 요인을 체포/사살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JTF-2는 그동안 아프간과 이라크 등지에서 미군 특수부대와 다수의 합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으며 아프간내에서 외국 특수전 부대로는 유일하게 미군의 Tier 1 부대들과 합동작전을 펼친 부대입니다. 그리고 미군 특수부대들과 고위급들은 JTF-2의 능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파병은 JTF-2라는 부대가 알려진 계기가 되었을 뿐 파병 자체는 1995년에 보스니아전에서 UN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세르비아 저격수들을 찾아 소탕하기 위한 2인 1조 팀들을 다수 파병하였습니다. 특히 캐나다 저격조는 전 세계에서 불과 몇 명만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훈련돼 있습니다. 그만큼 캐나다는 뛰어난 저격수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2017년에는 JTF-2 소속의 한 저격수가 이라크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IS 대원을 3,450m 밖에서 사살하여 8년만에 저격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저격에는 맥밀란 TAC-50 저격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총알이 목표에 맞기까지 10초를 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전 영국군 저격수가 세운 기록과 비교해 거의 1km나 늘어난 것으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깨지기 힘들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세계 저격수 기록 TOP5 중 3명이 JTF-2 소속)

 

 

JTF-2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을 정규군(Regular Force)에서 복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원 자격이 갖춰지면 첫 평가로 푸쉬업 풀업 밴치프래스 싯업 달리기 등 체력을 평가하는데 총점수제로 적어도 70%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모든 평가를 통과하면 온타리오주에 있는 Dwyer Hill Training Centre에서의 7개월 가량 특수전 훈련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훈련 프로그램은 델타포스의 훈련 프로그램을 본떠 총 4단계로 나눈 것으로 매우 가혹한 강도를 자랑합니다. 높은 수준의 육체적 능력, 지구력, 정신력을 요구합니다.

 

 

현재 캐나다 미디어가 JTF-2에 대해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JTF-2는 200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간 2억여달러의 예산을 쓰고 타격대 중에서도 공격전문 어썰터Assaulter가 되면 6단위 숫자의 봉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방수상의 해외순방이나 정부고위층의 해외 위험지구 방문 때도 이들을 보호하고 캐나다 시민들이 해외에서 납치됐을 때도 출동한다고 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판도를 뒤엎고 대한민국을 구해낸 작전이자 세계의 유명 작전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전입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인천상륙작전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천상륙작전 만큼 기억되길 바라는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51년 1월 4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등에 업고 수도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UN군이 한국-중국령 만주 국경을 향해 북진하던 중 중국에서 내려오는 중공군의 대공세로 인해 국군과 UN군은 서울을 다시 내주고 북위 37도선인 평택-삼척선까지 밀렸습니다.

 

 

중공군의 예상못한 한국전쟁 참전은 눈앞에 다가웠던 통일의 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지뢰 등을 매설해 다시는 인천과 인천 바다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다시 인천을 탈환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상륙작전이 아닌 월미도 포격이었습니다. 월미도를 포격하여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다시 떠올리고 병력을 인천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UN군이 다시 서울을 탈환하는데 수월할 것이며 인천까지 다시 탈환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월 3일 백두산함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인천항 안으로 돌입하여 월미도 전방 10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포대와 초소에 포격을 했습니다. (참고로 백두산함은 해군 장교 부인들이 바자회를 운영하고 장교는 월급의 10%, 병조장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씩 모으고 국민까지 모금운동하여 모인 돈으로 구입한 대한민국 해군 유일의 군함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순양함, 구축함 등도 백두산함과 함께 북한군 진지를 포격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상황도

그런데 포격으로 살펴보니 인천항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의 포대의 위치와 화력 규모가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작전은 상륙작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2월 10일을 D-DAY로 정하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작전을 하달받는 수병들 모습

하지만 2월 10일 D-DAY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아군 함대가 포격을 가하여 탄막을 만드는 동안 100여 명의 우리나라 해병대가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해야 했는데 해병대가 기상악화로 인천 외항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백두산함의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소령은 만조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인천 외항에 집결한 각 함정의 수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총 70명의 특공대로 구성된 상륙 부대를 긴급 편성하였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1951년 2월 10일 18:00시>

그리고 오후5시 미국과 영국의 함정의 함포사격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1시간 뒤 함정승조원으로 편성된 특공대 70명은 만석동 해안으로 상륙을 감행하였습니다. 당시 특공대를 지휘한 김종기 소령은 지난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병대 제2대대를 이끌었기에 만석동 해안 지리에 익숙했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주역들. 왼쪽부터 노명호 소령, 스미스 제독, 통역관 최병해 대위, 김종기 소령, 최영섭 소위.

육상 전투 훈련도 받지 않았지만 틍공대 임무에 지원한 해군 수병들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던 오후 7시 뒤늦게 도착한 100명의 해병대까지 만석동 해안에 상륙하였고 전의를 상실한 북한군은 방어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도주하였고 오후9시에 목표했던 기상대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제1차 인천상륙작전 기상대 고지 점령모습

그것으로 제2차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는 소규모 상륙부대로 작전을 수행하여 인천과 서울을 재탈환하고 38도선 진격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 해군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의 전공을 현양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전승비 건립계획을 추진하였고 2017년 11월 15일에 제2차 인천상륙작전을 기리는 전승비 제막식이 인천 중구 월미공원 맥아더길 입구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길이는 2017년 기준으로 4,716km 정도로 국토 면적에 비해 매우 촘촘하게 고속도로망이 짜여져 있습니다. 그만큼 고속도로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평균 80km~120km로 주행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대형 교통사고로 확대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주요 원인으로 운전 중 다른 일을 하느라 앞을 잘 못 본 주시 태만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졸음운전, 과속운전, 안전거리 미확보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가운데 운전자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가 전체 교통사고 원인의 9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고속도로 교통사고 8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  서해안 고속도로 9중 추돌사고

원인 운전자 부주의

인명피해 부상9명

2017년 11월 21일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서산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화물차가 가장먼저 서행하던 SM7 차량을 가격하고 앞에 있던 아우디 A6차량과 NF 쏘나타 차량 등을 추돌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아우디 A6 차량은 앞부분만 남았고 쏘나타 차량은 트럭에 밀려가면서 앞에 있던 화물차에 측면으로 충돌하면서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생존한것이 기적일정도인데 당시 이국종 교수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고당시 2명의 위급한 중상자가 있었는데 헬리콥터로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고 수술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7  천안논산고속도로 8중 추돌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9명

2017년 9월 2일 오후 5시에, 천안논산고속도로 논산 방향 266km 지점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로서, 총 8중 추돌사고입니다. 금호고속 소속의 고흥발 서울행 고속버스가 정차 중이던 차들을 그대로 추돌했습니다. 버스에 직접적으로 추돌당한 1세대 싼타페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차량에 탑승한 40대 부부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고속버스는 싼타페를 추돌한 뒤에도 앞에 있었던 QM3 차량과 혼다 어코드를 밀어버리면서 다른 차량들도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현장은 정말 참혹하고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6  경부고속도로 양재IC 7중 추돌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10여 명

2017년 7월 9일 오후 2시 45분에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양재IC 인근에서 오산교통 M5532번 버스가 기아 K5 차량을 포함한 승용차 7대를 들이받은 사고입니다. 공개된 버스 내부 CCTV 영상에 따르면 사고 버스의 기사는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 직전까지도 전방의 정체를 인지하지 못했고, 그대로 멈춰있던 차량들을 추돌했습니다.

 

 

버스의 속도가 빨랐고 기사도 사고 직전까지 앞에 차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처음 부딪힌 K5 차량은 매우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1차로까지 밀려났습니다.


5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연쇄 추돌 사고

원인 졸음운전

인명피해 사망4명 부상37명

2016년 7월 17일 오후 5시 54분에, 영동고속도로 인천방향 평창군 봉평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로 버스가 졸음운전으로 1차로에서 앞에 정차되어 있는 K5를 그대로 받아버리고 버스가 K5 차량 위로 올라타버리며 그 앞에 정차하고 있던 Q5, 그랜저, SM5, 5시리즈 GT 까지 연쇄 추돌하였습니다.

 

 

버스 바로 앞에 있던 K5 승용차에 탑승한 20대 여대생 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K5 승용차 운전자는 중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버스 기사 방 모는 코뼈 골절 등의 가벼운 부상을 입었습니다. 충격적인건 추돌 당시 버스의 속력은 무려 105km/h였습니다.


4  서해안 고속도로 17중 연쇄추돌

원인 짙은 안개

인명피해 사망1명 부상14명

2016년 1월 3일 오전 8시20분쯤 충남 홍성군 광천읍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면 광천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17중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당시 충남 지역에는 오전 7시를 기해 가시거리 40~140m의 안개 예보가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짙은 안개속에서 쏘나타가 첫 사고를 낸 뒤 뒤따르던 차량들이 감속하지 못해 8중, 3중 추돌사고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8중 추돌사고의 5번째 운전자가 사고 수습을 위해 도로위에 나섰다 다른 차량에 치이면서 2차사고까지 발생하였습니다.


3  중앙고속도로 43중 연쇄 추돌

원인 눈길, 안전거리 미확보

인명피해 부상23명

2015년 1월 16일 오전 10시 17분경, 횡성군 공근면 인근 중앙고속도로 부산방향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입니다. 사고 당일 해당구간에는 약 3mm의 눈이 내렸으며, 안개로 인해 시야도 제한된 상황이었습니다. 사고 구간을 운행중이던 승용차 1대가 눈길에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회전하면서 재차 중앙분리대를 충격한 후 1차로와 2차로에 걸쳐지며 정지했습니다.

 

 

승용차의 탑승자들은 사고후 차에서 내려 황급히 갓길을 이용해 회피하던 도중 다른 차량이 또다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멈춰서면서 후속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추돌하였습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구조대, 견인차 등이 접근하여 사고수습을 하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후방에서 추돌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였습니다.


2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원인 안개, 과속, 안전거리 미확보

인명피해 사망2명 부상130명

2015년 2월 11일 오전 9시 39분쯤 영종대교 상부도로 서울방향 3.8km지점에서 발생한 106중 연쇄 추돌사고입니다. 관광버스가 앞서 가던 검은색 쏘나타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을 시작으로 뒤따라오던 차량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사고의 규모와는 반대로 사망자가 2명으로 사망자의 존재 자체는 안타까웠지만 생각보다 적게 나온 사건이기도 합니다. 2명중 1명의 사망자는 회색 스타렉스운전자인데 안개때문에 앞을 못 보고 앞에 있던 트럭을 추돌하면서 운전자가 숨지게 되었습니다.


1  서해대교 29중 연쇄추돌

원인 안개, 과속

인명피해 사망12명 부상49명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는 2006년 10월 3일,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구간 상행선에서 일어난 최악의 교통사고입니다. 당시 서해대교에는 안개가 매우 짙었기에 서해대교 입구 전광판에 '안개 조심'이라는 경고가 떴으나 1차 추돌사고를 일으킨 25톤 트럭이 전방이 보이지 않아서 서해대교를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과속을 하다 앞서가던 1톤 트럭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추돌하면서 사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뒤 화성의 김치 공장으로 출근하는 근로자 10명을 태운 통근 승합차가 25톤 트럭과 추돌하였고 잠시 뒤 승합차 뒤로 승용차가 사고현장을 발견해 급히 제동을 걸어 멈추었지만, 승용차 뒤를 따라오던 택시가 미처 현장을 발견하지 못하고 승용차를 들이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승용차 2대가 또 추돌하였습니다.

 

 

이때 운전자들은 안개 때문에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일단 밖으로 나왔는데 잠시 뒤 1차로로 달리던 트레일러가 밖으로 나온 사고 차량 운전자를 발견하고는 브레이크를 밟은 뒤 콘크리트 방호벽과 부딪혔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서울로 가던 고속버스가 트레일러와 추돌하였고 3차로를 달리던 또 다른 1톤 트럭이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2차로를 달리던 시멘트를 실은 탱크로리가 1톤 트럭과 사고현장에 있던 차들과 추돌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뒤를 대형트럭 2대가 각각 2차로와 3차로에 있던 차들을 추돌하고 그러고 나서 또 다른 탱크로리가 2차로에 있던 차들과 추돌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여파로 화물차의 엔진이 튀어나오면서 시멘트를 실은 트럭 밑에 깔리는 바람에 폭발해 순식간에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사고차량들과 운전자들을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고 불이 난 사고 차량을 발견한 차들이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추가 추돌사고가 발생하면서 29중 추돌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타이어는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차량 결함으로 발생한 사망사고의 63%가 타이어 관련일 정도입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전국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파손으로 일어난 사고가 476건이나 되며 50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일부 고급 수입차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런플랫 타이어(Run-flat Ti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ZP : 공기압이 전혀 없는 상태)

 런플렛 타이어는 무엇인가?

주행 중 손상에 의해 타이어 내의 공기압이 제로가 되어도 80km/h의 속도로 100km 전후 거리의 주행이 가능한 타이어를 런플랫 타이어라고 합니다. 타이어 옆 부위에 강도가 센 특수고무를 덧대어 타이어 내부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더라도 타이어 외형을 유지하면서 주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런플렛 타이어는 기술적으로는 단순하기 때문에 지난 1930년 대에 첫 선을 보였는데 당시에는 험로를 다니거나 타이어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전장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군용 차량이나 특수 차량 그리고 방탄 차량 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런플렛 타이어의 다른 장점은?

타이어 손상을 대비하여 적재공간까지 차지하는 스페어 타이어를 갖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그만큼 연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둘째 주행 중 타이어가 펑크나면 도로 위의 위험한 환경에서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거나, 보험회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번거로움이 사라집니다.

 

 런플렛 타이어의 단점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런플렛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가격이 비쌉니다. 통상적으로 같은 사이즈일 경우 30%이상 비싸고 사이즈가 일반 타이어처럼 다양하지 못합니다.

 

둘째 런플랫 타이어는 펑크가 나도 계속 주행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펑크가 난 상태로 주행하게되면 타이어 측면의 손상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일반 타이어 경우 측면이 손상되지 않으면 수리를 통해 그 후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런플랫 타이어는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셋째 런플랫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승차감과 소음이 좋지 않아 많이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요즘 많은 회사들이 런플랫 타이어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런플랫 타이어 3세대는 약 120%의 무게까지 줄어들었고 승차감도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4세대가 개발중이나 점차 나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론

‘펑크가 나지 않는 타이어’로 안전성과 편의성이 강조된 제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사실 수요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위급상황에서 이동하는 물리적인 거리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짧을 뿐 아니라 견인서비스 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고속도로 2차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해준다는 장점때문에 수요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대 전쟁의 승패는 제공권 장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반도 경우 유사시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군 전투기가 서울과 수도권을 공격할 수 있어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전투기가 전쟁에 날카로운 검이라면 방공포는 단단한 방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공포 부대는 1955년 5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1고사포병여단으로 창설되었습니다.

 

▲1991년 7월 1일 수원기지에서 방공포병 전군식

이후 1964년 호크 유도탄 부대와 나이키 유도탄 부대가 창설되었으며 1972년 12월 1일 육군 방공포병사령부로 승격하였습니다. 그리고 41년 뒤인 1991년 7월 1일 육군 소속이었던 방공포병사령부가 공군으로 전군(轉軍)되었다가 주요 무기체계가 포에서 지대공유도탄으로 바뀌면서 2013년 6월부터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로 개칭되었습니다.

 

 

예하 부대는 북한의 실제 미사일이나 탄도탄이 발사되는것을 24시간감시레이더를 통해 감시하는 탄도탄감시대와 공군 유도탄 사격대회를 지원하는 사격지원대, 대구에 위치해 후방을 담당하는 제1방공유도탄여단, 천안에 위치하여 서해안부터 강원도 동해안까지 담당하는 제2방공유도탄여단, 서울 금천구에 위치해 최전방을 담당하는 제3방공유탄여단이 있습니다.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는 최근 계속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때문에 이스라엘의 탄도탄 감시레이더 슈퍼 그린파인 레이더(EL/M-2080 Green Pine radar)를 도입하여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레이더는 500KM의 탐지 거리를 가지며 3000m/s로 움직이는 목표를 30개 추적 가능하며 2017년 4월말 2대 추가 도입을 결정한 상태입니다. 

▲패트리어트 PAC-2

 

그리고 방공작전 중 초 고고도 및 고고도(15㎞ 이상)에서는 주로 우수한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어트 PAC-2을 사용합니다. PAC-2는 탄두중량이 무려 90kg대이며, 일반 공대공 미사일의 20kg짜리 탄두와는 비교도 안되는 살상반경을 갖고 있습니다. 후기형인 PAC-3 성능은 탄도탄격추 성능에서는 세계 정상급이라서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전력화 될 것으로 예상되며 주한미군은 이미 PAC-3 64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천궁

저공으로 침입해 오는 북한군 AN-2같은 수송기는 호크나 천궁으로 격추합니다. 현재 호크 미사일을 많이 운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개발한 더 뛰어난 성능의 천궁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북한군의 MiG-17, MiG-19 전투기 정도는 손쉽게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현제 서북도서에도 배치되어 중국 공군까지 견제하고 있습니다.

 

▲신궁

사거리 5㎞ 이내에서는 스팅어, 미스트랄(Mistral), 신궁 등의 휴대용 대공 미사일이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의 최대 보유국이지만 미스트랄보다 6kg정도 가벼운 무게를 가지고 95% 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국산 무기 신궁으로 대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K-30 비호

마지막으로 사거리 3㎞ 이내의 근거리에서는 단거리 자주대공포 발칸, 오리콘(Oerlikon), K-30 비호 등의 대공포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K-30 비호는 30mm 기관포 2문과 수색레이더 및 대공 센서를 장비하여 최대 탐지거리가 17km, 유효 사거리는 3km이며 대당 가격은 45억 원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방공포 장병들은 육지에 발을 디디고 서서 하늘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산들에 위치해 있다 보니 평상시에 이들이 겪어야 하는 최대의 적은 계절에 따른 눈과 외로움입니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방공포 장병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 가장 높은 지상에서 그보다 높은 하늘을 주시하며 우리나라 영공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 공군 방공유도탄사령부가 있어 든든합니다.